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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치료하는 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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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작성일 23-10-05 09:51

본문

설교자 이규한 목사
설교본문 말라기 4장 1-6절
설교날짜 2023-09-30

(2023년 9월 30일) 토요새벽강단 

제목: 치료하는 광선 본문: 말라기 4장 1-6절 설교: 이규한 목사

(말라기 4장 1-6절)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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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늘 말씀은 구약 성경의 마지막 장입니다. 단순히 구약 성경 맨 끝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약 성경 전체의 결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말라기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땅에 따뜻한 봄이 찾아 오면 온 세상에 환희와 기쁨이 가득찹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바로 그러한 세상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당장 여호와의 축복이 임할 것을 기대하고 제2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귀향민들은 부귀 영화가 아닌 생존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고난과 궁핍함과 싸워야 했습니다. 성전이 재건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솔로몬의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던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역사하고 계시는가? 신앙의 회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시며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능력의 주심이심을 선언합니다. 

말라기서에서 반복적으로 선언되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말씀하셨다’를 25번이나 사용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쳐있는 이 백성을 절대로 무관심하게 바라보시지 않으며, 과거에 그들의 조상에게 쏟았던 애정과 관심이 영원토록 지속되고 있음을 확증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회의감과 불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토록 사랑하신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도 이토록 고난과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말라기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과 말씀을 멸시했습니다(1:6).

제사장들이 먼저 타락하여 백성들을 잘못 가르쳤습니다(2:7-8).

조상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욕되게 했고(2:10), 아내와 맺은 결혼 언약을 파괴했으며(2:13-16), 여호와를 괴롭게 하였던 것입니다(2:17).

그들은 더 나아가서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경홀히 여김으로 하나님의 것을 훔치기 까지 하였습니다(3:8-9).

결국 남녀노소 지도자나 평민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총체적으로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범한 범죄에 대한 아무런 가책과 죄에 대한 인식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만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라기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율법(언약의 의무사항)을 가져다 준 사람이며 선지자들은 깨어진 율법(파괴된 언약)을 다시 이행하도록(언약을 회복시킴) 사역한 자들이다. 백성들이 어렵고 혹독한 현실속에서 이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과의 영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한 교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경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를 비판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라기서 말씀이 교훈 하지요? 

하나님이 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신앙때문에 이 모든 고통과 죄의 문제가 세상에 관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명목상으로만 하나님을 추구하고 실제로는 많은 불만을 토해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2]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중요한 사건입니까? 

만일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으셨다면 온 세상은 아직도 여전히 암흑과 절망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세상에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랐고 “치료하는 복음의 광선”이 영혼들의 마음속에 비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아직도 죄와 죽음의 저주속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이 귀한 복음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때를 ‘용광로 불 같은 날’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불타게 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자들은 그런 극렬한 환란의 날에도 살아 남게 된다는 강조의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광야 길을 무려 사십 년 동안 걸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살아 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환경은 용광로의 불과 같았습니다. 광야의 낮 온도는 오십 도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쓰러져 죽게 한 것은 더위나 목마름이 아니었지요?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죄악이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고 땅이 갈라져서 빠져 죽었습니다. 

용광로와 같은 환난의 때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태양의 뜨거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과 삶을 통해 퍼져 나가는 죄악의 불길입니다. 

죄악의 불길이 공동체에 치솟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불길에 휩싸이게 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뜨거운 풀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을림 하나 없이 살아남았지요? 그 뜨거운 풀무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용광로 불 같은 날’은 단순히 환란이나 전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죄악의 불길”을 이겨내고 있습니까? 이런 죄악의 불길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뜨거운 광야를 걸어도 죽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한 분 에수 그리스도! 반석에서 솟아 나는 생명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감옥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햇빛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뻐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그곳은 인격의 사각지대이며 공포의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햇볕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이 세상은 창살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이 세상 전체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토굴이었고 외양간과 같은 소우리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사람들의 영혼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깨어지고 상해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저마다 사슬과 채찍과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못하게 막는 죄의 사슬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 막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 몸을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드림으로 바로 그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은혜가 각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게 한 것입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기서 ‘공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도 이 세상에는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진리는 예수님이 비추신 진리에 비하면 반딧불과 같은 것이었지요? 그것들은 너무나도 희미한 진리여서 죄악의 사슬을 끊어 내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혼을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덮고 있던 모든 죄의 세력들이 물러가도 외양간에서 뛰쳐 나온 송아지들 처험 큰 기쁨과 자유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말라기서의 ‘치료하는 광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격은 죄의 영향력 때문에 병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많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이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비추어 지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병적인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자가 건전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감정이 메말라서 이 세상에서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를 몰랐던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고 웃음이 찾아옵니다.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이 출옥을 하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송아지처럼 뛰면서 기뻐할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 갇혀 있을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얻고 나면 얼마든지 선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혼의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무서운 죽음의 토굴에서 빠져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몸을 감고 있던 죄의 사슬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4]문제는 예수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완전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나오기는 했는데 너무나도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에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날마다 능히 죄와 싸워 이겨가는 성화의 삶'입니다.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귀의 역사의 특징은 진리를 호도하고 교묘하게 속여서 사람들을 거짓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한번 밝혀지고 난 후에는 더 이상 그 거짓과 속임의 영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속는 것이지 진리를 아는 사람을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밟아 버린다는 것은 두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상 생활 가운데 죄가 아무리 속여도 속지 않는 것입니다. 죄에 속지 않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죄악을 경계하고 악의 세력을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의 세력이 강해 보여도 결국은 진실하고 의로운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악이 패망할 때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리가 여러분들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나의 삶 가운데도 은밀한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밟아서 부수어야 합니다. 악과 싸우지 않는 자는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정당화 합니까? 죄악과 타협해서 형통의 길을 가려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욕되게 하고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과 또 같은 것입니다. 


[5]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말라기 선지자가 구약성경의 끝부분에 강조하고 있는 교훈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미국 시민이 미국 법을 지켜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 그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믿음과 순종의 길을 포기한다면 어불성설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신앙과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 두렵고 무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바로 이 말라기서 말씀의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가 제사장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오늘 말씀을 인용하였지요? 누가복음 1장 17절입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7).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이키고 자식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십계 명 중 다섯 번째 계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 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말씀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자식의 마음이 부모에게 돌이켜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를 말씀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까? 그들 안에 있는 죄성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회개와 믿음이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바로 그 복음적 설교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무엇이 임했습니까?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참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전인격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원하시지 부분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시고 전심으로 주님께 모든 남은 삶을 맡길 때 살아계신 하니님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서가 약속한 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사랑하는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성도여러분들의 마음과 삶에 충만히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9월 30일 토요새벽묵상 이규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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