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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1월 1일 목회 칼럼입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영국의 귀족 저택에서 평생을 일한 스티븐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철저하게 헌신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이 섬겼던 주인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소중한 인간관계와 사랑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충실하게 살았는가?” 우리도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수십 년을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은퇴를 맞이하고 직책과 성취가 사라질 때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내가 평생 이루어 놓은 것들이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 시대의 비극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놀라운 답을 보여 줍니다. 지난번 아테네에서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던 바울이 오늘은 고린도의 작업장에서 천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도가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일터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라는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여십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들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노동과 일상적인 만남까지 자신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바울의 삶은 평범한 일상 조차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열매로 이어지는 성령충만한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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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3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2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22일차 | 사도행전 27-28장2026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27-28장폭풍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5)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납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며,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데 왜 길은 점점 더 험해지는 것일까? 사도행전 27장은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우리에게 거센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던 바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오랫동안 소망했던 로마로 가는 길이었지만, 그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자유로운 선교사가 아니라 군인들의 감시를 받는 죄수였습니다. 항해하기에 위험한 계절이 되었을 때 바울은 여행을 계속하면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과 선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했습니다. 처음에는 순풍이 불어 항해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쳤고, 배는 거센 바람에 휩쓸려 방향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바다에 버렸고,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도 보이지 않자 마침내 살아날 소망마저 잃었습니다.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 가족의 어려움과 관계의 갈등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평소에는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도 인생의 폭풍 앞에서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항해에 익숙한 선원들과 군인들이 있었지만, 거센 폭풍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확신이 흔들릴 때 비로소 무엇을 진정으로 의지하며 살아왔는지 드러나기도 합니다.모든 사람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바울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5). 바울에게 특별한 항해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폭풍을 멈추게 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자가 나타나 바울이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야 하며, 함께 항해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 주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바울은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습니다. 믿음은 폭풍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폭풍이 여전히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바울이 믿었던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에게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행 27:23). 이 고백에는 깊은 신앙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배에 타고 있었지만 그의 참된 소속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죄수라고 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음의 증인으로 붙들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정체성도 세상이 부여하는 지위나 평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삶의 형편이 달라져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해서 바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배가 육지에 가까워졌을 때 선원들이 도망하려 하자 바울은 그들이 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고 힘을 내라고 권면했으며,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침내 배는 파선되었지만 배에 타고 있던 이백칠십육 명은 모두 육지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면서 사람들의 책임 있는 행동도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지혜롭게 판단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도 맡겨진 책임에 충실해야 합니다.바울 일행이 도착한 곳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섬사람들은 낯선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바울은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독사에게 물렸지만 해를 입지 않았고,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비롯한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폭풍 때문에 계획에 없던 섬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획하지 않았던 자리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은 멈추지 않습니다.마침내 바울은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오랫동안 소망했던 제국의 중심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키는 군인과 함께 지내며 가택 연금 상태에 놓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바울의 선교는 제한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 28:31). 바울은 매여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도 복음의 전파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석방되었다는 이야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있다는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바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제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셨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을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로마까지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가두고 박해했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흩어졌고,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사람의 눈에 끝처럼 보였던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폭풍과 감옥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도 환경이 언제나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주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도 폭풍이 불어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고난을 피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이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변하지 않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오늘도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을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계획이 어긋났다고 낙심하기보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행하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소망하십시오. 사도행전은 끝났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복음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붙들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며 모든 일을 통제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과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거센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현실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하옵소서.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기다림 속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맡겨진 자리에서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영원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과 감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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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3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2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21일차 | 사도행전 25-26장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25-26장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닙니다"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행 26:26)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실을 밝히고 싶고, 오해를 받으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아 마음이 무너집니다. 사도행전 25–26장에는 이런 상황 속에 놓인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고, 유대인들의 고발과 로마 관리들의 정치적 계산 속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바울이 가이사랴에 갇혀 있는 동안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뀌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여전히 바울을 제거하려 했고, 베스도에게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길에서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겠느냐고 물었지만,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는 선택만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는 동시에 복음을 로마에 전할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결정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바울에게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3:11). 바울은 앞날을 모두 알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습니다.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런 판단이나 준비 없이 모든 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신뢰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고발 앞에서 사실을 밝히고 정당한 절차를 요청했습니다.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책임 있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진실과 양심을 지키며 최선을 다할 수는 있습니다.얼마 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가이사랴를 방문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을 설명하며 왕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울은 왕과 총독, 여러 고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와 회심, 복음의 사명을 증언했습니다. 한때 자신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열심이 옳다고 확신했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인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냈습니다.바울은 자신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주셨다고 증언했습니다(행 26:18). 복음은 단순히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의 중심도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증언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복음의 진리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처럼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말씀으로 위로받았던 순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던 시간,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붙들어 주셨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꾸미는 일이 아닙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신실하게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바울의 증언을 듣던 베스도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행 26:24). 바울은 감정적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고 있다고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아그립바 왕에게 이 일이 한쪽 구석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숨겨진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선포된 하나님의 구원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권력자들 앞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믿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직장에서 불편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거절당할까 봐 침묵하기도 합니다. 물론 복음을 전할 때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가 두렵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심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짧은 말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느냐고 묻자, 바울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행 26:29). 바울은 자신을 가둔 사람들에게 원망이나 복수의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단순히 재판에서 이기고 자유를 얻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심판하는 사람들까지 복음으로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바울의 모습을 묵상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고, 사람들의 조롱과 거절을 당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바울이 원수처럼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자신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을 단순히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진심을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거나, 믿음 때문에 불편한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사람들의 평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왕과 총독 앞에 섰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게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몸은 결박되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자유로웠습니다.오늘도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진실과 사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는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지혜롭게 행동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울 때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자신의 결박보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우리도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주님께 받은 은혜를 드러내지 못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실과 양심을 지키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증언했던 바울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역사하신 주님의 사랑을 겸손하게 전하게 하옵소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원망과 미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복음의 빛이 드러나게 하시며, 주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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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2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2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20일차 | 사도행전 23-24장2026년 10월 29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23-24장고난의 밤에도 우리 곁에 서 계시는 주님"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우리는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행한 일이 오해받고, 옳은 일을 했는데도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억울함보다 더 깊은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데 왜 길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 사도행전 23–24장은 이러한 질문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을 보여 줍니다.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공회 앞에 섰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살아왔다고 말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습니다. 공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의 부활에 관한 논쟁으로 혼란에 빠졌고, 바울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졌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이 아니라 체포와 폭력과 죽음의 위협이었습니다.그날 밤 바울은 로마 군대의 영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낮 동안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동족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거절과 분노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행 23:11). 주님께서는 바울이 처한 어려움을 모르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었습니다.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께 먼저 상황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막힌 길을 열어 주시고, 억울한 오해를 풀어 주시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빨리 끝내 달라고 간구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은 믿음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때로 주님께서는 환경을 즉시 바꾸시기보다 그 환경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바울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감옥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적대자를 없애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앞으로 감당할 사명이 남아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고난이 끝났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다음 날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드러났습니다. 사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조카가 그 계획을 듣고 천부장에게 알렸습니다. 천부장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가이사랴로 안전하게 호송하도록 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음모를 꾸민 사람들을 심판한 것이 아닙니다. 한 청년이 우연히 알게 된 정보와 로마 군대의 보호 조치를 통해 바울의 생명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평범한 사건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우리의 삶에도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누군가 건네준 짧은 위로의 말이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도움의 손길이 막막했던 문제를 풀어 주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우연처럼 보였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 역시 죽음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자유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언제나 고난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붙드시며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사도행전 24장에서 바울은 총독 벨릭스 앞에 섭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발했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가 사실이 아님을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은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소망한다고 증언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부활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행 24:16). 사람들의 판단은 불공정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벨릭스는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도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그를 계속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울에게는 답답하고 긴 기다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로마에서의 증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바울의 삶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 사이에는 때로 긴 기다림이 있습니다. 믿음은 그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결과가 빨리 나타나야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감옥 생활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대보다 더 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다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 자신을 더욱 깊이 의지하도록 가르치십니다.바울의 고난을 묵상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고, 거짓 고발과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받은 것이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과 부활의 승리가 있었기에 바울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붙들어야 할 소망도 자신의 인내나 용기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오해를 받거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무거움을 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곁에 서셨던 주님께서 오늘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모든 상황을 즉시 바꾸어 주시겠다는 약속은 없지만,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람들의 판단이나 눈앞의 상황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신실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담대하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담대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양심과 진실을 지키고, 기다림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며, 작은 도움의 손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십시오. 고난의 밤에도 우리 곁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믿음과 소망으로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은혜로 붙들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오랫동안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의심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의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도 주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기다림의 시간에도 기도와 순종을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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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2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9일차 | 사도행전 21-22장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21-22장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은혜의 삶"바울이 이르되 여러분 앞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 22:15 참조)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진심이 오해받고, 옳다고 믿었던 선택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에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모든 일이 순조로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도행전 21장은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우리에게 바울의 예루살렘 여정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자신을 기다리는 고난을 알고 있었지만, 주님께 받은 사명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바울이 가이사랴에 머물고 있을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울의 띠로 자신의 손과 발을 묶으며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결박당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바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바울은 고난을 좋아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고난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순종의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납니다.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있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유익도 있습니다. 신앙의 양심을 따라 결정했지만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오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모든 일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언제나 고난을 피하는 길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없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담대함은 자신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바울에 관한 잘못된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버리라고 가르친다고 오해했습니다. 바울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장로들의 권면을 받아 정결 예식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성전에서 보고 군중을 선동하자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소동이 벌어졌고, 로마 군인들이 개입하여 그를 체포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바울에게 돌아온 것은 환영이 아니라 분노와 폭력이었습니다.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으로 섬겼지만 기대했던 이해와 감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겸손하게 돌아보고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평가를 자신의 삶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마음과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놀라운 장면은 바울이 군인들에게 붙잡힌 후에 나타납니다. 분노한 군중은 바울을 없애라고 외쳤고, 군인들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영내로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군중 앞에 서서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지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으로 태어나 율법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과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는지 고백했습니다.바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일어났습니다. 정오 무렵 하늘로부터 큰 빛이 비쳤고, 바울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바울이 누구신지 묻자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행 22:7-8).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열심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회심은 단순히 생각을 바꾼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던 삶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쉽게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은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강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박해하던 죄인까지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도 동일한 은혜에 있습니다.바울은 자신의 회심 이야기를 마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든 사람 앞에서 보고 들은 것의 증인으로 부르셨다고 증언했습니다(행 22:15). 복음의 증인은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과거는 부끄러운 실패의 역사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실패를 복음의 증언으로 바꾸셨습니다. 한때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 이제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이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셨고, 사람들의 오해와 거절과 폭력을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바울의 고난이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합니다. 바울이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위해 먼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바울의 삶을 붙들었고, 고난의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돌보며 오랜 시간 희생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과 지나온 잘못 때문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자신의 완전함에 있지 않습니다. 박해자 바울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사명자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보다 크시며, 지금의 연약함 속에서도 은혜로 일하십니다.오늘도 사람들의 평가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진실과 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바울이 분노한 군중 앞에서도 자신을 만나 주신 주님을 증언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받은 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평범한 하루도 복음의 증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맡겨진 길을 믿음과 사랑으로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우리를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며 주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에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새로운 삶으로 부르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오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과 사랑을 잃지 않게 하시고,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께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과거와 부족함에 매이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며,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과 감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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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2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8일차 | 사도행전 19-20장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19-20장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우리는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고,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기억하게 될까?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이 질문에 자신의 삶으로 대답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바울은 앞으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능력이나 용기에 대한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19장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복음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우상숭배와 마술이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책들을 모아 불살랐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20). 복음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적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입니다.우리에게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충분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평안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다른 것들이 우리의 두려움과 소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이 옛 삶을 상징하던 책들을 내려놓았듯이, 우리도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합니다.복음이 확장되자 에베소에는 거센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판매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이 위협받는다고 느꼈고, 도시는 큰 소동에 휩싸였습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자 우상숭배를 통해 이익을 얻던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돈과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을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자신이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기억한 것은 자신의 업적이나 성공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감당했던 수고와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다 보면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만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고, 교회를 섬기며 오해와 실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눈물이 없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눈물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까지도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명보다 앞세우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는 것이 그의 삶을 움직이는 이유였습니다.우리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가,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인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우리는 바울과 똑같은 선교의 길을 걷도록 부름받은 것은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바울은 작별의 순간에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행 20:32). 자신이 계속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하는 성도들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 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며 모든 위험에서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말씀과 기도로 함께하는 것입니다.바울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며 약한 사람들을 돕는 본을 보였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했습니다(행 20:35). 복음은 우리의 삶을 받는 사람에서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고 연약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데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감당해 온 책임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달려온 길의 성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속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일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보다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주님의 은혜에 맡기며 기도하십시오. 언젠가 우리도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은혜는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맡기신 길을 믿음과 감사로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명을 잊고 살아왔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옵소서.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로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와 이웃을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며 기도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달려갈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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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31.2026 (2026년 10월 2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7일차 | 사도행전 16-18장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16-18장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1)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언제 끝날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도행전 16장에는 한밤중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입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행 16:30). 그는 처음부터 구원을 찾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죄수들을 감시하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지키던 죄수들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귀신 들린 여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해 주었지만, 여종을 통해 돈을 벌던 주인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결과가 고난과 감옥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른길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기도하며 순종했지만 기대했던 문은 열리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고난이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이 올라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바울과 실라는 깊은 밤, 발이 차꼬에 묶인 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5). 고난이 사라졌기 때문에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감옥의 문이 열리기 전에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형편보다 크신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주님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감옥은 바울과 실라의 자유를 빼앗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소망까지 빼앗지는 못했습니다.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바울이 크게 외쳤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행 16:28). 자신을 가두었던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간수는 원망하거나 보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한 영혼이었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직책과 권한도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바울과 실라의 대답은 놀라울 만큼 분명했습니다. 더 많은 선행을 쌓거나 과거의 잘못을 자신의 노력으로 보상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선포했습니다. 구원의 길은 우리의 능력이나 공로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선포하는 기쁜 소식입니다.간수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바울과 실라를 감시하던 사람이 이제 두 사람의 상처를 씻어 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행 16:32-34). 복음은 간수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보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과 살아가는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복음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관계와 선택과 삶의 태도까지 새롭게 합니다.사도행전 17장과 18장은 구원의 복음이 더 넓은 세상으로 전파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아덴과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을 풀어 예수님이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고, 아덴의 철학자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의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배경과 문화는 달랐지만 복음의 중심은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의 확장은 사람들의 탁월한 능력보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고 믿음을 일으키시는 은혜의 역사였습니다.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살펴보았습니다(행 17:11). 아덴에서는 부활을 듣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을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익숙한 성경 말씀을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거나 자신의 생각에 맞는 말씀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은 다릅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믿음과 회개로 부르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오랫동안 복음을 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랑과 진실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말솜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책임은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믿음의 열매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9). 바울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반대와 위협을 경험했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선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더 강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라고 약속하셨습니다(행 18:10). 고난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는 힘도 우리가 언제나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있습니까? 빌립보 간수처럼 삶의 기반이 흔들리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의 바울처럼 맡겨진 사명 앞에서 지쳐 있습니까? 우리의 형편은 서로 다르지만 필요한 분은 동일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고, 고난받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며, 두려워하는 자를 은혜로 붙드십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의 삶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오늘도 고난 속에서 기도와 찬송을 잃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연약함을 발견할 때 판단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말씀을 읽을 때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말고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돌아보십시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지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좋은 것을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한밤중의 감옥에서 시작된 구원의 이야기는 한 가정의 기쁨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평범한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우리의 삶을 붙드는 가장 확실한 소망입니다. 감옥의 문이 열리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은혜는 죄와 죽음에 매여 있던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된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 구원의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우리가 받은 은혜가 누군가에게 생명의 소식이 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울과 실라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찬송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빌립보 간수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복음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역사하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사랑으로 품게 하옵소서.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옵소서. 두려움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며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소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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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2026년 10월 25일 목회 칼럼입니다.
    오래된 명화를 복원하는 장면을 보면 묘한 감동이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림 위에는 먼지와 그을음이 쌓이고, 오래된 니스가 변색되며, 때로는 후대의 덧칠까지 더해집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원래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원가가 표면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기 시작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색과 빛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아, 이 그림은 원래 이런 그림이었구나.” 복원가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 화가가 그렸던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저는 종교개혁을 생각할 때 바로 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루터와 개혁자들은 새로운 복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복음 위에 덧씌워진 것들을 걷어내며 다시 물었습니다. “처음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인간의 공로가 은혜와 뒤섞이고, 교회의 권위가 말씀의 권위를 가릴 때, 그들은 다시 말씀으로, 은혜로, 믿음으로 돌아갔고 그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서 끝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내 신앙 위에는 지금 무엇이 덧칠되어 있는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로 충분했는데 신앙 경력이 나의 의가 될 수 있고, 말씀 앞에 떨던 마음도 어느 순간 “이미 아는 말씀”이라는 익숙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이 왜 다시 말씀과 은혜와 믿음을 붙들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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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6) 말씀 위에 인생을 세우라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6) 말씀 위에 인생을 세우라 (마 7장 13-27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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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5)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5)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마 7장 1-12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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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4) 무엇을 먼저 구할 것인가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4) 무엇을 먼저 구할 것인가 (마 6장 19-34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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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3) 원수를 사랑하는 나라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3) 원수를 사랑하는 나라 (마 5장 38-48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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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2)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라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2)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라 (마 5장 13-16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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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24.2026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1)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새6] 산상수훈과 하나님 나라 (1)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 5장 1-12절)  [이 게시물은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님에 의해 2026-10-24 19:38:05 특별영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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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8일 목회 칼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손안의 전화기 하나로 세계 곳곳의 소식을 접하고,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풍성해졌지만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하기는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해석이 쏟아지고, 어제까지 옳다고 여겼던 가치가 오늘은 부정되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다양한 세계관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신념조차 선택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확신은 약해지고,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삶의 방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약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방문했던 아테네도 비슷했습니다. 철학과 예술, 종교와 지성이 발달한 도시에는 수많은 신전과 우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논하고 여러 신을 섬겼지만, 정작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질문을 이해하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복음을 그들의 생각에 맞추어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명과 역사를 주관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을 회개와 믿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 혼란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상이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와 삶의 길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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