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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6일차 | 사도행전 14-15장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14-15장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1)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믿음과 열심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얼마나 충성스럽게 봉사했는지, 얼마나 말씀대로 살아왔는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평가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믿음까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처음에는 감사함으로 시작했던 신앙이 어느새 무거운 의무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부족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집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작은 실패 앞에서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우리는 무엇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까?사도행전 14장과 15장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교회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복음의 길에는 박해와 오해가 있었고, 교회 안에는 구원의 본질을 둘러싼 심각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중심에는 한 가지 진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바울과 바나바는 첫 번째 선교 여행을 계속하며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두 사도를 돌로 치려는 음모가 일어났고,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실제로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성 밖에 버려졌습니다.복음을 전하는 길이 언제나 환영과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루스드라에서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놀라운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며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두 사도는 옷을 찢으며 사람들을 말렸습니다."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행 14:15).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영광을 거절했습니다. 자신들을 높이기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면 기쁘고,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집니다. 때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때에도 자신을 높이지 않았고, 박해를 받을 때에도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우리의 믿음은 사람들의 평가보다 주님의 은혜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칭찬받는 날에도 겸손하고, 오해받는 날에도 낙심하지 않으며, 주님께서 맡기신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바울은 돌에 맞아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 복음 전하는 길을 계속했습니다. 더베에서 복음을 전한 뒤에는 자신을 박해했던 지역으로 돌아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 14:22).바울은 믿으면 고난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우리도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납니다.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했던 열매를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묻게 됩니다.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아닙니다.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이미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자기 백성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사도행전 15장에서는 교회 안에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됩니다.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었습니다.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셨으며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유대인조차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던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마침내 베드로는 복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행 15:11).유대인도 이방인도 구원의 길은 하나입니다. 종교적인 배경이나 율법을 지킨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복음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을 우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죄인이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구원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며, 아무리 열심히 봉사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주십니다.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이 진리를 깊이 깨달을수록 신앙의 모습도 달라집니다.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선한 일을 행합니다.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내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쉽게 정죄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길고 성경을 많이 알며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의 멍에를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우상숭배와 음행을 멀리하고 공동체의 거룩함과 화평을 지키도록 권면했습니다.은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순종은 구원의 값을 치르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을 조용히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자신의 신앙생활이 만족스러운 날에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다가,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한 날에는 주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완전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에 달려 있습니다.물론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숨거나 절망하지 말고 주님의 은혜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바울과 바나바가 박해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성공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믿었고, 성령께서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신뢰했습니다.오늘 하루도 자신의 부족함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깊이 바라보십시오. 사람들의 인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누군가의 연약함을 발견할 때 정죄하기보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사랑으로 품어 주십시오.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안과 감사와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아무런 공로도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자신의 열심과 의로움을 의지하고, 때로는 부족함과 실패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의심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며,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사랑으로 품고, 감사함으로 순종하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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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5일차 | 사도행전 11-13장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11-13장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 12:24)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하면 어려움이 사라지고,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기쁘게 받아들이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언제나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수록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오해받고, 선한 뜻으로 시작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지 묻게 되는 순간입니다.사도행전 11장부터 13장에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 세계로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박해도 계속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순교했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복음 전파를 가로막으려는 권력의 위협도 있었습니다.누가는 이러한 사건들 사이에 짧지만 놀라운 말씀을 기록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 12:24).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가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까지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흩어 놓을 수는 있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우리의 눈에는 막힌 길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 자신이 경험한 일을 설명합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유대인 성도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 온 종교적 전통과 경계를 넘어서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베드로는 자신이 무엇을 계획하고 결정했는지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증언했습니다."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행 11:17)."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우리의 마음에도 깊이 새겨야 할 고백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경험 안에 하나님의 일을 제한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주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익숙한 방법을 벗어나면 불안해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찾아오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경계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행 11:18).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복음은 안디옥에서도 놀랍게 전파되었습니다.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했습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자 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행 11:20-21).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행 11:23).바나바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우리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쉽게 발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 먼저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베푸시는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주목받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왔습니다.바나바는 사울을 찾아 다소로 갔고, 그를 안디옥으로 데려와 함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한때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이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받고 있었습니다.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행 11:26).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어떤 종교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일터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그리스도인의 삶은 주일에 드리는 예배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관계와 선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으로 드러납니다.사도행전 12장에서는 교회를 향한 박해가 더욱 거세집니다.헤롯은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 12:5).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움직일 힘도 없었고 감옥의 문을 열 방법도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렸고 베드로는 자유를 얻었습니다.야고보는 순교했고 베드로는 구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가 원하는 결과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자기 백성을 붙들고 계십니다.믿음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3장에 이르면 복음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안디옥 교회가 주님을 섬기며 금식할 때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행 13:2).안디옥 교회는 두 사람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냈습니다.교회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붙잡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더 큰 일을 위해 기꺼이 보내었습니다. 성령께서 시작하신 복음의 역사가 새로운 지역과 민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바울은 구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가 예수님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선포했습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38).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우리의 신앙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열심히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고 교회가 성장하는 일도 귀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역시 소중합니다.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주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채 사역의 성과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습니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11장부터 13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보여 줍니다.사람들의 편견을 넘어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는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는 평범한 성도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우셨고,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복음이 더 넓은 세상으로 전해지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해졌습니다.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를 소망합니다.세상적인 성공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구하기보다 우리 마음에 말씀이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원망보다 감사가 자라고, 두려움보다 믿음이 깊어지며, 편견보다 사랑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격려하는 바나바가 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는 교회가 되며,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역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인도하시며 자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생각과 세상의 권세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좁은 생각과 편견으로 주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바나바처럼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사랑으로 격려하고 세워 주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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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4일차 | 사도행전 9-10장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9-10장 은혜가 바꾸는 인생, 경계를 넘어서는 복음"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지나온 삶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살핍니다. 한 번 마음에 새겨진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과거를 알게 되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사도행전 9장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입니다.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현장에 있었고, 교회를 없애기 위해 집집마다 들어가 성도들을 끌어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조상들의 전통에 열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9:4).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박해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기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얼마나 깊이 연합되어 계신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사울은 물었습니다."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5)."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5).사울의 인생을 지탱하던 모든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울이 부정했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사울은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야 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주님은 사울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를 해쳤고 자신들까지 체포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아나니아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사람들은 사울의 과거를 보았지만 예수님은 사울을 통해 이루실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아나니아는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자신들을 박해하던 사람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형제 사울아" (행 9:17).짧은 한마디에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원수처럼 여겼던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우리도 때로 사울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열심으로 정작 주님의 마음을 놓칠 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신앙의 성숙은 언제나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사울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을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이것이 은혜입니다.우리의 과거가 하나님의 은혜보다 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패가 주님의 구원 능력을 제한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가장 완고한 마음도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10장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였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오랜 종교적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생각을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이 담긴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의 정결 규례를 이유로 거절했습니다.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행 10:15).베드로는 처음에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오고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고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도록 하셨고,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으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고백했습니다."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행 10:34).베드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복음의 넓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십니다. 모든 민족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을 주시는 구주이십니다 (행 10:43).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때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방인들도 동일한 복음의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사울에게는 회심이 필요했고 베드로에게는 복음에 합당한 시선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대적하던 삶에서 돌이켜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경계를 넘어야 했습니다.두 사람 모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바꾸어 주셔야 할 마음의 자리가 있습니다.누군가의 과거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습니까? 한 번 실망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 어려운 마음이 있습니까?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해 놓은 기준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진 교만과 편견의 벽을 허무십니다.오늘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사울처럼 자신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익숙한 생각에 갇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아처럼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하며,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기다리는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한다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를 오래 참아 주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복음은 사람을 바꿉니다.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관계를 새롭게 하며 사랑의 경계를 넓혀 갑니다.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의 과거보다 크신 주님을 신뢰하고, 내가 미처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울처럼 자신의 생각과 열심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베드로처럼 익숙한 기준과 편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마음도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실패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셨음을 늘 기억하게 하시며, 받은 은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품게 하옵소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마음속에 세워 놓은 미움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시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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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2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1일차 | 사도행전 1-3장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사도행전 1-3장성령께서 임하시면"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하시는 자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때를 궁금해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때와 시기에 대한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씀하셨습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하게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실 사명은 인간의 열심이나 결심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도 두려움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에 모두 도망했습니다.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해서 나아가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 무엇인가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습니다 (행 1:12-14).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시간이었습니다.오순절이 되었을 때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러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행 2:1-11).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 담대하게 섰습니다.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중심에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자신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2:36).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특별한 경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죄인을 회개하게 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하며,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합니다.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참으로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삼천 명가량이 말씀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행 2:37-41).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말씀을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고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입술에서만 선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행 2:42-47).사도행전 3장에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그는 날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았을 때도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베드로가 말했습니다."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 3:6).베드로에게는 그 사람이 기대했던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베드로는 놀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이름이 그 사람을 온전하게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행 3:12-16).성령께서 임하신 이후 제자들의 삶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웃의 고통을 돌아보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때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능력이 없으며, 가진 것도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처음부터 담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주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경험과 능력입니까?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입니까? 아니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입니까?성령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 곁에는 미문 앞에 앉아 있던 사람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가족이 있고,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으며,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이웃의 아픔을 보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 사랑하게 하시며, 입술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성령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교만을 내려놓고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도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하시며, 고통받는 이웃을 돌아보고 복음의 소망을 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어디에 있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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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2일차 | 사도행전 4-5장2026년 10월 13일 화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4-5장고난과 함께 성장하는 교회"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 4:20)성전 미문 앞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임을 담대하게 증언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선포했습니다.복음이 전해지자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고치고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였습니다.다음 날 공회 앞에 선 베드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서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까?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베드로의 담대함은 타고난 성격이나 자신의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연약했던 사람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공회는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했습니다."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행 4:20).복음은 사도들에게 단순한 종교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구원의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기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드러내면 불편해질까 두렵고, 복음을 말하면 관계가 어려워질까 염려합니다. 세상의 평가 앞에서는 담대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베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사도들은 위협을 받고 돌아온 뒤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없는 편안한 길을 열어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행 4:29).놀라운 기도입니다. 환경이 달라지기를 구하기보다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께 충성할 수 있는 담대함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고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행 4:31).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는 고난이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성령의 역사는 공동체의 삶에도 나타났습니다. 성도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고,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공동체 위에 충만했습니다 (행 4:32-35).복음은 사람들의 말뿐 아니라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것을 움켜쥐던 사람들이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사랑이 서로를 섬기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사도행전 5장은 교회 안에 또 다른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소유 일부를 감추면서 전부를 드린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문제는 재산을 얼마나 바쳤는가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행 5:1-11).교회가 외부의 핍박을 이겨 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거룩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실 뿐 아니라 마음의 숨은 동기까지 돌아보게 하십니다.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봉사하고 헌신하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이 어느새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주님은 우리의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사도들은 다시 붙잡혀 공회 앞에 섰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명령에 베드로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행 5:29).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공회에서 나오는 사도들의 마음에는 원망보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받았기 때문입니다 (행 5:40-41).그날 이후에도 사도들은 성전과 집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행 5:42).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에는 때로 어려움과 반대가 따릅니다.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쓸수록 더 많은 부담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오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우리의 믿음은 편안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 누구를 의지하는지 배우고, 순종을 통해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갑니다.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작은 일에서도 정직하며,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 안에서 주님의 교회로 세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여 믿음을 감추었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셨던 담대함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셔서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며, 사랑과 나눔으로 서로를 세워 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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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8.2026 (2026년 10월 1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3일차 | 사도행전 6-8장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6-8장 흩어져도 멈추지 않는 복음"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 8:4)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일마다 응답받고, 섬기는 자리마다 기쁨이 넘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에 어려움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합니다.사도행전 6장부터 8장에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성장하던 예루살렘 교회에 갈등이 생기고,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며,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집니다.사람의 눈으로 보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오히려 더욱 넓은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면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공동체 안에서도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드러났습니다.사도들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세워 구제의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행 6:4).교회는 갈등이 전혀 없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함께 자라 가는 공동체입니다.우리도 교회 안에서 때로 실망하고 상처받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기대가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보다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지키는 일에만 마음을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랑으로 문제를 풀어 가고 있습니까?성령께서 세우시는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말씀과 기도 안에서 하나 되어 갑니다.일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혜와 성령을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거짓 증인들을 세워 스데반을 공회 앞에 끌고 갔습니다.스데반은 자신을 변호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모세와 선지자들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이루어 오신 구원의 역사를 증언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배척하고 죽였음을 선포했습니다.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습니다.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행 7:56).사람들은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지만 스데반의 시선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얼마나 놀라운 장면입니까?스데반이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었던 것은 자신의 의로움이나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스데반은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겼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 7:60).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스데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을 죽음 앞에서도 따랐습니다.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생각합니까? 억울함을 풀고 싶고,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으며, 때로는 받은 상처만큼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스데반은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예수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원망과 미움을 넘어 용서의 기도로 이어졌습니다.우리의 힘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마음을 다스릴 때 비로소 가능한 삶입니다.스데반의 죽음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놀랍게도 흩어진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빌립은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했고,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광야 길에서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이사야의 글을 풀어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행 8:35).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사마리아를 지나 더 먼 세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박해는 교회를 흩어 놓았지만 복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성도들의 발걸음을 통해 복음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셨습니다.우리의 삶에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익숙했던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고, 오랫동안 붙들었던 계획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모든 고난의 이유를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고난 자체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형편이 달라져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주님은 우리의 실패와 아픔까지 아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동행하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6장부터 8장은 성령께서 세우시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보여 줍니다.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고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교회, 흩어진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우리의 신앙도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가 나타나야 합니다.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가 어디이든 그곳에서 주님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기를 바랍니다.복음은 편안한 환경에서만 전해지는 소식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고난과 눈물의 자리에서도 전해지는 생명의 소식입니다.오늘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흩어져도 멈추지 않았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성령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만 앞세우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를 붙드는 믿음을 주옵소서.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과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마음에 남아 있는 원망과 상처를 십자가의 은혜로 치유하여 주시고,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삶의 환경이 달라지고 우리의 계획이 무너질 때에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게 하시며, 어디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과 말로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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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11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유가 가져오는 불안과 책임을 두려워하여 다시 새로운 속박에 의존하는 역설을 분석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도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불안하고, 자녀가 독립한 뒤에도 그들의 미래를 염려합니다. 마음과 삶을 묶는 쇠사슬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으려는 갈망,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6장에는 놀라운 역설이 등장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발에 차꼬까지 채워졌지만, 한밤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반면 자유롭게 움직이며 죄수들을 통제하던 간수는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은 자유로웠고, 쇠사슬을 채운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가 진정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삶에서 시작됩니다. 참된 자유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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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1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0일차 | 요한복음 20-21장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20-21장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어두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의 마음도 어두웠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주님은 죽으셨고, 그들이 기대했던 미래도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아직 성경이 말씀한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 20:1-10).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까이 서 계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마리아야" (요 20:16).익숙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마리아의 눈이 열렸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절망의 장소였던 무덤이 부활을 처음 증언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그날 저녁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닫힌 문을 넘어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주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했던 제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다시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지니신 바로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도마는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못 자국을 보고 손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요 20:25).여드레 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도마의 의심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도마의 입에서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요한복음은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선언으로 시작했습니다 (요 1:1).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한 제자의 입술에서 같은 진리가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세상의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시며, 단지 하나님에 관해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우리도 때로 도마처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눈앞의 상황이 달라져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주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요한은 우리가 바로 이 믿음에 이르도록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밝힙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성경을 읽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그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요한복음의 마지막에는 또 한 사람의 실패한 제자가 등장합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7).주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마지막 장면으로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를 다시 찾아오시고 사랑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사명도 맡기셨습니다."내 양을 먹이라" (요 21:17).부활은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시고 새로운 삶으로 부르십니다. 도마의 의심을 믿음의 고백으로 바꾸시고, 베드로의 실패를 목양의 사명으로 바꾸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의심하는 순간이 있고 실패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렸다는 이유로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문 안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의심하던 도마를 찾아오셨으며,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고백하십시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내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고백입니다.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의심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평강으로, 실패를 새로운 사명으로 바꾸시며 다시 주님을 따라 걷게 하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눈앞의 상황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말씀을 의지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도마와 함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진실하게 고백하게 하시며, 실패했을 때에도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게 하옵소서. 베드로를 다시 세우시고 사명을 맡기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 이름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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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9일차 | 요한복음 17-19장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17-19장다 이루었다"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두려움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이루려는 순종이 담겨 있습니다."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높아지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는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뜻이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훗날 그들의 말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요 17:20). 그 기도 안에 오늘 우리도 들어 있습니다."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 숨어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를 기도하셨습니다.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십니다.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주님은 도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도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붙잡히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갑자기 닥친 비극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받아들이신 순종의 잔이었습니다.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묻습니다."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진리가 무엇인지 묻는 빌라도 앞에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면서도 군중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진리의 음성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신 채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그 자리에서 완성되고 있었습니다.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다 이루었다" (요 19:30).이 말씀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의 탄식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다는 승리의 선언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마침내 그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요 1:29).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 이루어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의로워져야 하고, 실패한 것을 만회해야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다 이루었다."내가 이루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내가 얼마나 신실한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죄책감과 실패를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눌릴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나를 위해 순종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주님께서 이루신 일에 무엇을 더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 은혜를 믿고 감사함으로 살아가십시오.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세상 속에서 진리를 따르며,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십자가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오늘도 우리의 구원과 삶을 붙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의 의와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지 않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주님의 완전한 구원을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실패와 죄책감에 눌릴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말씀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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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8일차 | 요한복음 13-16장2026년 10월 8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13-16장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곧 자신을 팔 유다가 있었고, 몇 시간 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붙잡히시면 두려움에 흩어질 것입니다.요한은 이 밤을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제자들이 끝까지 신실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실패를 모두 아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사랑입니다.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요 13:4-5).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낮은 사람이 맡던 일이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십자가는 이미 이 작은 방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사랑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 우리를 섬기시는 사랑입니다. 발을 씻기신 손은 곧 십자가에 못 박힐 손입니다.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신 주님은 곧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드는 힘보다 주님이 나를 붙드시는 사랑이 더 강합니다.제자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우리도 앞날을 알 수 없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익숙했던 길이 막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상황을 먼저 설명해 주시기보다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우리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무엇이 참인지 혼란스러울 때 우리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음이 메마르고 소망을 잃을 때 우리의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주님은 제자들을 홀로 남겨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요 14:26).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 15:5).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삶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 때 사랑할 힘을 얻고, 견딜 힘을 얻으며,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길이라고 해서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말씀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과 승리의 약속이었습니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실 승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을 붙드는 것은 우리의 강함이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흔들려도 주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 자신이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오늘도 그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내 힘으로 살아가려 애쓰기보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더 깊이 붙어 있으십시오.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모두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려 하지 않고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깊이 머물게 하시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게 하시고, 환난 가운데서도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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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7일차 | 요한복음 9-12장2026년 10월 7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9-12장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요한복음 9-12장을 읽으며 마음에 오래 남는 모습은 무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슬픔에 잠겼고, 함께 있던 사람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 11:35).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붙들고 있던 많은 것이 힘을 잃습니다. 인간의 지식도 능력도 죽음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 앞에서는 믿음의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마르다의 마음에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1).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조금만 일찍 응답해 주셨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가.예수님은 마르다에게 고난의 이유를 모두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25).예수님은 부활을 주시는 분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상황이 원하는 대로 바뀌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주님은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6).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갖는 확신이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아직 무덤 안에 있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했습니다.예수님은 무덤 앞으로 가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뒤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나사로야 나오라" (요 11:43).죽었던 사람이 걸어 나왔습니다. 죽음도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요한복음 9장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뜹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0:11).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십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분을 가리킵니다.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는 빛이시며,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는 목자이시며, 죽음보다 강하신 부활과 생명이십니다.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십니다. 다른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신 분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십자가는 예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타난 생명의 능력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전하게 드러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도 옮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돌이 놓일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염려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그 자리에서 주님은 먼저 우리의 믿음을 물으십니다."이것을 네가 믿느냐."오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무덤 앞에 서 있을 때에도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눈에는 끝처럼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닙니다.오늘도 우리의 상황보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두려움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함께 걸으십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슬픔과 눈물을 아시며 함께 울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상황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을 따라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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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6일차 | 요한복음 5-8장  2026년 10월 6일 화요일 아침묵상  본문 요한복음 5-8장생명의 떡, 생수의 강, 생명의 빛"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예루살렘 베데스다 못가에 서른여덟 해 동안 병으로 누워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누군가 자신을 물에 넣어 주기를 기다렸지만 물이 움직일 때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 물으셨습니다."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5:8).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 있던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놀라운 치유를 목격한 종교 지도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보다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회복시키신 기쁨보다 자신들이 지켜 온 규칙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일이 아버지의 일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밝히십니다."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성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성경이 가리키는 중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갈릴리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만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습니다 (요 6:1-13). 사람들은 놀라운 기적에 열광했습니다.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습니다 (요 6:15).다음 날에도 무리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을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떡보다 더 큰 선물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배고픔을 잠시 해결해 주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오병이어의 표적은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에만 시선을 두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참된 생명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무엇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 자신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말씀이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떡을 먹을 때는 많은 사람이 따랐지만 예수님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 앞에서는 돌아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베드로가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초막절이 되자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명절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서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광야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하던 절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생수의 근원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이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요 7:38-39).요한복음 8장에 이르면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더욱 분명해집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깊은 굶주림을 채우십니다.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십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은 점점 거세졌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으며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을 언급하시며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 8:58).예수님은 단순히 아브라함보다 오래된 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정체와 연결하여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했습니다 (요 8:59).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5-8장에는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타납니다. 서른여덟 해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은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광야의 무리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초막절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자를 일으키셨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보다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만 찾지 말고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는 부르심입니다.우리도 주님께 많은 것을 구합니다. 건강을 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두 주님께 가지고 갈 수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예수님 자신을 원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배고픈 마음으로 생명의 떡이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목마른 영혼으로 생수를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앞길이 어둡게 느껴질 때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찾는 참된 생명과 만족과 빛이 있습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만 구하다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시고, 영생의 말씀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바라보게 하시며,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시고,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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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5일차 | 요한복음 1-4장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아침묵상  본문 요한복음 1-4장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니라"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창조 이전의 영원으로 이끕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요 1:1-4).요한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이 지으신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배신이 있으며, 질병과 죽음이 있는 인간의 삶 한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막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그 영광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요 1:14).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고 외칩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요한복음의 시작부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드러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도 한 사람씩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요 1:41).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와서 보라"고 초대합니다 (요 1:46).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잔치가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은 놀라운 사건 자체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줍니다."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광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어느 날 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을 알고 율법을 가르치며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지식보다 더 깊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야기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성취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요한복음 4장에서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와 달리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시간에 홀로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여러 관계의 실패와 아픔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물을 좀 달라" (요 4:7).우물물을 둘러싼 대화는 어느새 한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목마름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물로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알고 계셨습니다."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 4:14).여인은 자신의 삶을 채워 줄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왔습니다. 사람에게서 찾았고 관계 속에서도 찾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를 알고 계셨습니다. 숨기고 싶은 삶까지 아셨습니다. 정죄하여 밀어내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셨습니다.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밝히십니다."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요 4:26).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사람이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던 사람이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요 4:29).한 사람의 삶의 방향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만났고, 숨어 있던 사람이 증인이 되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4장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한 세례 요한,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 혼인 잔치에서 부족함을 경험한 사람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 깊은 목마름을 품고 살아가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부족함 때문에 주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품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상처와 실패를 안고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영원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상처와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 1:12).오늘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주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눈앞에 일어나는 일만 바라보지 말고 그 모든 표적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뒤 물동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일상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오늘 우리의 삶도 같은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으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상처와 목마름을 아시면서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생명을 말씀하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도 새롭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과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더욱 깊이 믿게 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삶과 말로 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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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4일 목회 칼럼입니다.
    최근 관심을 받은 멜 로빈스의 『The Let Them Theory』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그들을 끊임없이 통제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Let them.”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이해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우리처럼 생각하고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신앙생활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다 보면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정말 충분합니까?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인가가 더 필요합니까? “복음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사도행전 15장의 초대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첫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그 열린 문 앞에 다시 문턱을 세우려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할례와 율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긴 논쟁 끝에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선언합니다. 야고보가 일어나 성경을 펼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말씀을 따라가면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에게 도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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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4일차 | 누가복음 21-24장2026년 10월 3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21-24장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7-48)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다가올 고난과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인자의 다시 오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숨기지 않으십니다. 박해가 있고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며 세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믿음은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1:33).그러나 이제 예수님 자신의 고난의 시간이 찾아옵니다.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십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2:19-20). 이제 십자가에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새 언약의 희생이었습니다.그러나 그 거룩한 식탁에서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눅 22:24).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고 계셨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질서를 가르쳐 주십니다."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7).세상의 왕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섬김은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릅니다.그날 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두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눅 22:42).제자들은 잠들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며,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길을 걸어가십니다.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십니다.그런데 누가복음은 십자가 위에서도 계속되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보여 줍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눅 23:34). 그리고 곁에 달린 한 죄인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43).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버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구원에 실패한 자리가 아니라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자리였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외치십니다."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길은 아버지를 신뢰하는 순종의 길이었습니다.그러나 이야기는 십자가와 무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천사가 여인들에게 묻습니다."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 24:5-6).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그날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희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곁으로 다가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눅 24:13-16).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눅 24:27). 그제야 제자들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약속된 구원의 성취였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그리고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이 사라지신 뒤 두 사람은 서로 말합니다."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절망하며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마침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경을 깨닫게 하시며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 24:44-47).그리고 제자들에게 선언하십니다."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상으로 계속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제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했고, 잠들었으며, 도망했고,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낙심하여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말씀을 풀어 주시고, 눈을 열어 주시고,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실패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첫 제자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전해 준 사도적 복음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복음을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오늘도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낙심하여 걸어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삶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타내십시오.복음을 들은 사람은 이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감사드립니다. 낙심하고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며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옵소서.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게 하시며,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과 말로 전하는 충성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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