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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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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0일차 | 스바냐 1-3장2026년 8월 29일(토) 아침묵상본문: 스바냐 3장심판의 날에도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사랑입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함께 섬겼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으며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스바냐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은 처음에는 두렵고 무서운 날로 다가옵니다.그러나 스바냐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분위기가 놀랍게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제거하시고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셔서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고, 수치를 당하던 사람들을 회복시키시며, 그들 가운데 친히 거하십니다. 심판을 넘어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특별히 스바냐 3장 17절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우리의 가장 큰 복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실패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회복된 백성을 바라보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그들을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심판받아 마땅했던 백성을 하나님께서 다시 품으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이루어집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자녀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겠다는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때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과 실패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두려워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밀어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용서하시고 품으시며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스바냐서의 마지막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고, 버림받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바라보고, 지나간 실패보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마지못해 받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주님에게서 멀어졌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하시고 다시 품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연약함과 실패보다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더 크게 바라보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날마다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가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누리고, 그 사랑을 가정과 교회와 이웃에게 나누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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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9일차 | 나훔 1장–하박국 3장2026년 8월 28일(금) 아침묵상본문: 하박국 2장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하박국서는 한 선지자가 하나님께 던지는 정직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박국이 바라본 세상에는 폭력과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율법은 힘을 잃었고 정의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느 때까지리이까”(합 1:2).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왜 이런 악을 그대로 두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하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합 1:6). 바벨론은 유다보다 더 잔인하고 교만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박국은 다시 질문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악한 민족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현실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려 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악한 사람이 형통하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하박국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합 2:1). 이해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합 2:3). 하나님의 약속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교만한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믿음은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갖는 확신이 아닙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복음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을 선포합니다(롬 1:17, 갈 3:11). 히브리서 역시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고난 가운데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할 것을 권면합니다(히 10:37-39).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하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며, 미래가 불확실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오래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믿음으로 한 걸음을 걸어가십시오. 의인은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제 눈앞의 현실이 이해되지 않고 주님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에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믿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붙들게 하시며, 비록 더딜지라도 주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어려운 현실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의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하게 하시고, 앞길이 분명하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과 역사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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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8일차 | 미가 1–7장2026년 8월 27일(목) 아침묵상본문: 미가 4장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미 4:3)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강대국 앗수르가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남유다 역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라 밖에는 전쟁의 두려움이 있었고 나라 안에는 불의와 탐욕이 가득했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했고 힘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았습니다.바로 이러한 시대에 미가는 놀라운 미래를 바라봅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미 4:1).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불안과 심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민족이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길로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나타나는 가장 아름다운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것입니다(미 4:3). 칼과 창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보습과 낫은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어 생명을 살리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면 사람을 해치던 도구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변화됩니다.이 말씀은 단순히 전쟁이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우리의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경쟁하고 빼앗고 상처 주던 삶에서 섬기고 나누고 살리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우리의 모든 관계와 삶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온전한 평화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런 평화가 정말 가능할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도 작은 말 한마디가 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미가의 말씀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현실 한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를 바라보게 합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미가는 베들레헴에서 한 통치자가 나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미 5:5). 예수님은 단순히 평화를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분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는 평화를 기다리는 사람인 동시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9).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칼과 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난의 말을 격려의 말로, 미움의 마음을 용서의 마음으로, 경쟁하려는 마음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가진 칼과 창을 하나님께 내려놓읍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상처 입히는 말과 마음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보습과 낫으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정에서 한 사람을 격려하고, 일터에서 한 사람을 배려하며, 갈등 가운데 먼저 손을 내미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십시오.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는 사람을 상하게 하던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변화됩니다.오늘의 기도평화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마음과 말과 행동 속에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과 창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미움과 경쟁과 판단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와 섬김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제가 있는 곳에서 갈등을 더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화목의 은혜를 기억하며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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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7일차 | 오바댜 1장–요나 4장2026년 8월 26일(수) 아침묵상본문: 요나 4장하나님의 마음은 내가 긋는 경계보다 넓습니다“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욘 4:11)요나서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셨지만 요나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바람과 물고기를 통하여 요나를 돌이키시고 다시 니느웨로 보내십니다. 마침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그런데 요나서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4장에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자 요나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기록합니다(욘 4:1). 한 도시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으니 선지자에게는 가장 기쁜 순간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오히려 분노했습니다.그 이유는 니느웨가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괴롭히던 잔인한 제국이었습니다. 요나의 눈에 그들은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심판받아야 할 원수들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욘 4:2).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과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것은 기뻐하면서도 그 은혜가 원수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런 요나를 책망하시기 전에 하나의 박넝쿨을 통해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자라게 하여 뜨거운 햇볕 아래 있던 요나에게 그늘을 주시자 요나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어 시들게 하자 요나는 다시 화를 내며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그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욘 4:9). 요나는 자신이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박넝쿨 하나는 아까워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니느웨는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이 질문은 요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누구를 용서할 것인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마음속으로 경계를 만들 때가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긋는 경계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그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복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민족과 문화와 신분과 과거의 모든 장벽을 넘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특별히 요나서는 결론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납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요나에게 대답을 요구하시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초청하십니다.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을 나도 긍휼히 여기고 있는가.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에 그어 놓은 경계를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편견보다 넓고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의 판단보다 깊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가까운 사람뿐 아니라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냅시다.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영혼을 우리도 아끼는 것, 그것이 복음을 받은 성도의 마음입니다.오늘의 기도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기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저의 편견과 판단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영혼을 저도 사랑하게 하옵소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나누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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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6일차 | 아모스 4–9장2026년 8월 25일(화) 아침묵상본문: 아모스 5장하나님을 찾는 것이 다시 사는 길입니다“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4)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번영하던 시대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에 국가는 강해졌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습니다. 사람들은 성소에 모여 제사를 드렸고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종교생활의 이면에는 심각한 영적 타락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는 짓밟혔으며 재판에서는 정의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모스를 통해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심판의 말씀 한가운데에서 놀라운 초청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을 즉시 버리시는 대신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은 단순히 종교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 같은 종교적인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암 5:5). 그들이 찾아야 할 것은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예배의 형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며 여러 신앙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의 중심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없다면 신앙은 어느 순간 형식만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종교적인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보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찾는 삶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아모스는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 5:1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과 정의를 구합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다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억압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와 노래까지 거절하셨습니다. 그들의 예배가 화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찬양하면서 삶의 자리에서는 정의와 사랑을 버렸습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은 가정과 일터와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40).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그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약한 사람을 돌아보고 용서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고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는 신앙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세상의 성공이나 풍요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신앙의 형식에 익숙해지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믿음이 사랑과 정의와 정직한 삶으로 나타나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길입니다.오늘의 기도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신앙의 형식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주님을 찾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찾게 하시고, 예배드리는 삶과 일상의 삶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게 하시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시는 말씀을 붙들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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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2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5일차 | 요엘 1장–아모스 3장2026년 8월 24일(월) 아침묵상본문: 요엘 2장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욜 2:13)요엘서는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해진 유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시작합니다. 밭은 황폐하고 곡식은 사라졌으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까지 말라 버렸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 재앙을 단순한 자연재해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외칩니다.요엘서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며 자신의 거룩함과 주권을 나타내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목적은 백성을 멸망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돌아올 길을 열어 주십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 여기에서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이제라도”입니다. 이미 많은 것을 잘못했고, 오랫동안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으며, 삶이 황폐해진 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돌아가기에는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는 겉모습만의 회개가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슬픔과 회개의 표시로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십니다(욜 2:13).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인 행동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돌이키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가 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회개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합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욜 2:13).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두려움에 쫓겨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황폐했던 땅에 다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고, 메뚜기가 먹어 버린 햇수까지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욜 2:19, 25). 그리고 그 회복은 물질적인 풍요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약속하십니다(욜 2:28). 아들과 딸이 예언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이 약속은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행 2:16-2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열렸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돌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찢어진 마음입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했던 것이 있다면 내려놓으십시오. 오래된 죄와 습관 때문에 주님께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이제라도”라는 말씀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 돌아가기에는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자를 받아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오늘의 기도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살펴 주시고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입술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찢는 진실한 회개로 주님께 돌아가게 하시며,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오늘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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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23일 목회칼럼입니다.
    애덤 그랜트는 『Hidden Potential』에서 우리가 사람의 가능성을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성과만으로 너무 쉽게 판단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역시 몇 번의 실패와 실망을 경험하면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마음속에 꼬리표를 붙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 8장까지만 읽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사용하실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질문받았다면 아무도 사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결박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사람에게 숨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능성은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이 아니라, 그 사람을 찾아오셔서 새롭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실패와 고집과 상처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새롭게 빚어 가실 미래를 보고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들고 땅끝을 향해 달려갈 바울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일하고 계신 사람에게 너무 빨리 최종 판결을 내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포기했다고 하나님까지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를 보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변화될 미래를 보십니다. 우리는 장애물을 보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사명을 보십니다. 우리가 포기한 사람이 하나님의 다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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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2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4일차 | 호세아 11–14장2026년 8월 22일(토) 아침묵상본문: 호세아 11장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호 11:8)호세아 11장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깊고 아름답게 보여 주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호 11:1).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때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르실수록 그들은 오히려 바알에게 제사하며 우상을 섬겼습니다(호 11:2).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아버지처럼 에브라임의 팔을 붙들어 걸음을 가르치셨고 그들의 상처를 고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자신을 치료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호 11:3).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호 1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붙드신 것은 억압의 줄이 아니라 사랑의 줄이었습니다. 목에서 멍에를 벗겨 주고 몸을 굽혀 먹을 것을 주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외면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우리의 모습도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던 순간과 응답해 주셨던 기도를 잊고 세상의 것을 더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그래서 호세아 11장 8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마음이 드러납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 말씀에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반역에는 반드시 징계가 따릅니다. 그러나 징계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호 11:8).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죄인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사랑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목적도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듯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이키시고 다시 품으십니다.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은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호세아의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합니다(마 2:15).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심판을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는 나를 포기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우리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있습니다.오늘의 기도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제가 주님의 은혜를 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에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줄로 다시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며 그 사랑 안에서 주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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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2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3일차 | 호세아 6–10장2026년 8월 21일(금) 아침묵상본문: 호세아 6장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 열심보다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원하십니다“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호세아 6장은 매우 아름다운 회개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 하실 것이며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호 6:1). 그리고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칩니다(호 6:3). 언뜻 보면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고 계셨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 6:4). 그들의 회개는 아침 구름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이슬처럼 금방 말라 버렸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고백했지만 삶은 여전히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은혜를 받고 결단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 결단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순간적인 감동이나 일시적인 열심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사랑과 신실한 관계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인애는 단순한 친절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안에서 나타나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사는 계속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에게 불의를 행하는 모순된 신앙을 책망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알면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면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알면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게 됩니다.예수님께서는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두 번이나 인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의 뜻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 9:13). 또 안식일 규정을 앞세워 제자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마 12:7). 예수님은 외적인 종교적 형식은 지키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잃어버린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우리는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교회를 섬깁니다. 이 모든 것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는 삶과 분리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랑과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종교적인 활동의 양보다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지를 보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이 아침 구름과 쉬 없어지는 이슬처럼 순간적인 열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 자신을 더욱 깊이 알아가십시오. 예배에서 받은 은혜를 가정과 일터에서 사랑과 긍휼과 순종으로 살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종교적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말씀을 붙들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오늘의 기도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입술의 고백과 종교적인 열심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침 구름과 이슬처럼 쉽게 사라지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신실한 믿음을 주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날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시고, 제가 받은 은혜가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사랑과 긍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품어 주고 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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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2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2일차 | 호세아 1–5장2026년 8월 20일(목) 아침묵상본문: 호세아 2장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 2:23)호세아서의 시작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결혼과 가정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겼습니다. 호세아의 깨어진 가정은 단순히 한 가정의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이스라엘은 풍요와 번영을 바알이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준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라”고 말합니다(호 2:5). 그러나 실제로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호 2: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면서도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우리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과 물질과 재능과 사람들을 누리면서 어느 순간 그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선물 자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붙잡느라 정작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놓치는 것입니다. 우상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한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호세아서의 놀라움은 이스라엘의 배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그들을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호 2:14). 여기서 광야는 단순한 심판의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만나시는 회복의 장소가 됩니다.이스라엘은 풍요로울 때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이끄십니다. 의지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붙잡던 것들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광야와 같은 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고 익숙하게 의지하던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광야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십니다. 광야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더욱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이스라엘은 언약을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회복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여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롬 9:25-26).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긍휼을 입었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려움을 만났다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때로는 광야를 지나게 하시지만 그 광야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다시 품어 주십니다. 우리의 신실함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우리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더 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사랑하면서 정작 주님을 잊었던 저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풍요와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가장 사랑하게 하옵소서.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날 때에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곳에서 다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실패보다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신실하게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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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1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1일차 | 다니엘 9–12장2026년 8월 19일(수) 아침묵상본문: 다니엘 12장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3)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은 역사의 마지막 때를 바라보게 합니다. 다니엘은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어려운 때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난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단 12:1). 역사의 마지막에는 환난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다니엘이 이 말씀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현실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오랜 세월 황폐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강대국들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에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과 박해와 고난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역사는 강한 나라와 권력자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가지 진리를 반복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우리도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교회와 다음 세대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미래의 모든 사건을 미리 알아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두 아는 데 있지 않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의 마지막을 붙들고 계심을 믿는 데 있습니다.다니엘은 이어서 놀라운 부활의 약속을 듣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단 12:2).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이처럼 분명하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보여 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1:25). 그리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마지막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와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그렇다면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니엘 12장은 “지혜 있는 자”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를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지혜는 날짜를 계산하고 세상의 모든 사건을 종말의 징조와 연결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붙들며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들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낙심한 사람을 말씀으로 격려하며, 자녀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길을 잃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에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이름 없이 살아갈지라도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환상을 들은 다니엘에게 뜻밖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단 12:13). 모든 것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미래를 해결하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마지막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늘의 충성을 선택하십시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세상의 빛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믿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오늘의 기도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변화와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시며, 우리의 말과 삶과 섬김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음 너머의 영원한 소망을 품게 하시고,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님께서 맡기신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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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1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0일차 | 다니엘 5–8장2026년 8월 18일(화) 아침묵상본문: 다니엘 6장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다니엘 6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자굴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중심은 사자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했던 힘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생겨난 용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기도의 습관이었습니다.다니엘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의 충성됨과 탁월함을 인정하여 그를 전국을 다스리는 높은 자리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관리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그의 허물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말씀합니다(단 6:4).결국 그들은 다니엘의 신앙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지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에게 기도는 단순한 개인적 경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걸린 선택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면 죽을 수 있었고, 잠시 중단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다니엘의 선택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두 표현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또한 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갑자기 기도를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날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믿음이 위기의 날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상이 그의 지위를 빼앗을 수 있고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은 빼앗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다니엘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왕의 조서도 취소되지 않았고 사자굴의 위협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먼저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드리는 반응만이 아닙니다. 아직 앞길을 알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다음 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부르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단 6:22). 다니엘을 지킨 것은 그의 높은 지위도, 뛰어난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를 지키셨습니다.우리에게도 믿음을 흔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신앙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고,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뒤로 미루며, 사람들의 평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반응에 따라 믿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상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한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평범한 날의 기도가 위기의 날에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감사하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의 상황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오늘의 기도살아 계시며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니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믿음을 주옵소서.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압력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게 하시고,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전에 하던 대로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감사하게 하시며, 오늘도 저의 삶과 가정과 모든 앞날을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옵소서. 어떤 사자굴과 같은 상황에서도 함께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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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1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9일차 | 다니엘 1–4장2026년 8월 17일(월) 아침묵상본문: 다니엘 3장뜻을 정한 믿음은 세상의 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8)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과 전혀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나라를 잃었고 성전을 떠났으며 이름까지 바벨론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은 그 믿음의 출발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단 1:8)라고 표현합니다. 환경이 그들의 삶을 바꾸었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그 믿음은 다니엘 3장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을 받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엎드려 절하도록 명령합니다. 거절하는 사람은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선택지는 분명했습니다. 한 번만 절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만 신상에 절하는 타협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마음속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선택으로 나타나야 했기 때문입니다.세 친구는 왕 앞에서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단 3:17).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이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결국 세 사람은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분명 세 사람을 결박하여 던졌는데 불 가운데에는 네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단 3:24-25). 하나님은 그들이 불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 주신 것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 때때로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련을 없애 주시지는 않지만 그 시련 가운데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우리에게도 풀무불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믿음을 지키면 손해를 볼 것 같고, 정직하게 살면 뒤처질 것 같으며,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간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저는 주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참된 믿음은 상황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묻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은 형편이 좋을 때만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충성하는 믿음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 싸우기 위한 거창한 결심보다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는 믿음입니다. 작은 선택에서부터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며, 결과보다 순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뜻을 정한 사람은 시험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선택해 온 믿음으로 그 시험을 통과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풀무불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불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참된 믿음은 불이 없는 삶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입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압력과 두려움 앞에서도 믿음을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원하는 결과를 주실 때만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선택하는 믿음을 주소서. 작은 일에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뜻을 정하게 하시고,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을 때에도 그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의 모든 선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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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6일 목회칼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계획대로 잘되고 사람들이 모이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계획이 무너지고 흩어지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씨앗을 창고에 모아 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모여 있을 때 보존되지만 흩어질 때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큰 박해가 일어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누가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라는 모판에서 자라난 복음의 씨앗들을 더 넓은 세상에 뿌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떠나고 싶지 않은 은혜의 자리였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이 떠나야 할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모으심으로 준비하시고, 흩으심으로 사용하십니다. 요셉의 애굽도, 모세의 미디안도, 다니엘의 바벨론도 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에서 무너짐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면 너무 빨리 실패라고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눈에는 흩어짐처럼 보이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새로운 파송이 되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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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8일차 | 에스겔 45–48장2026년 8월 15일(토)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47장“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9)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새 성전의 문지방 아래에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차던 물이 천 척을 지나자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지나자 허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됩니다(겔 47:3-5). 처음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물줄기가 점점 깊어져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의 강이 된 것입니다.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은 특별합니다. 물이 이미 풍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메마르고 죽어 있는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마침내 그 물은 사해에 이릅니다. 사해는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바닷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수가 죽음의 바다에 닿자 그곳에 생명이 시작됩니다. 물고기가 번성하고 강 좌우에는 각종 과실나무가 자라며, 그 잎사귀는 시들지 않고 열매도 끊이지 않습니다.이 환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진 생명력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곳에는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것이 다시 풍성해지며, 절망했던 곳에 새로운 소망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해가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죽어 있던 바다가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물이 그곳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기도가 메마르고,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흘러오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에스겔의 환상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요한은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요 7:39). 에스겔이 보았던 생명의 강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메마른 영혼이 살아나고, 상처 입은 마음이 회복되며,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갑니다.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은혜를 받아 저장하는 저수지가 아니라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가정으로 흘러가고, 받은 용서가 이웃에게 흘러가며, 받은 위로가 고통받는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이 조금 더 살아나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조금 더 소망을 얻는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메말라 있다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에게만 머물게 하지 마십시오. 가정과 교회와 일터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곳마다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곳에 다시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오늘의 기도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메마른 제 영혼에 성령의 생수를 풍성히 부어 주옵소서. 제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날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사랑과 용서와 위로를 나에게만 간직하지 않고 가정과 교회와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하시며, 오늘 제가 머무는 곳마다 주님의 생명과 소망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죽은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곳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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