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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3일차 | 누가복음 17-20장2026년 10월 2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7-20장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계속됩니다.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누가복음 17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죄인이 용서받으며, 잃어버린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으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인자가 다시 오실 날을 말씀하시며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이 임했습니다 (눅 17:26-30).문제는 일상생활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오늘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기다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끊임없이 찾아갑니다. 아무도 그녀의 억울함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판장은 그녀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눅 18:1-5).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끈질긴 간청을 들어준다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어찌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눅 18:6-7).그리고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주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마지막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응답이 더디게 느껴져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눈앞의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보일 때에도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입니다.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세리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눅 18:14). 하나님 나라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누가복음 19장에 이르면 그 은혜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눅 19:2-4).그런데 놀랍게도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찾아보십니다."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 19:5).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눅 19:8).은혜를 만난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9-10).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왕을 맞이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십니다 (눅 19:41). 그들은 평화의 왕이 가까이 오셨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19:45-46).누가복음 20장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계속해서 공격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거절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눅 20:9-16).이제 그 아들이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7-20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고,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합니다.과부처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세리처럼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오.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난 은혜가 우리의 삶과 관계와 물질을 변화시키게 하십시오. 그리고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잊지 마십시오.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세리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시며, 삭개오처럼 주님의 은혜를 만난 우리의 삶에 참된 변화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인자가 오실 때 찾으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며 복음을 나타내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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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2일차 | 누가복음 13-16장2026년 10월 1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3-16장회개하라"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누가복음 13장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한 비극적인 사건을 전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비극을 당한 사람에게 특별한 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시선을 죽은 사람들의 죄에서 살아 있는 자신들의 삶으로 돌리십니다."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질문은 "왜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눅 13:4-5).그래서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주인은 삼 년 동안 열매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하자 포도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다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 다시 한번 열매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눅 13:6-9).이 비유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열매 없는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 참으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그런데 누가복음 14장에 이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큰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핑계를 댑니다. 밭을 샀기 때문에, 소를 샀기 때문에, 결혼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눅 14:16-20).그들의 문제는 밭이나 소나 가정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초대를 사소하게 여겼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에게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눅 14:21).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이들이 잔치의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하나님 나라의 문은 은혜로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초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 이르면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따뜻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나아오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불평합니다."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눅 15:2).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는 여인, 그리고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눅 15:3-32).특별히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회개가 무엇인지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은 모든 것을 허비합니다. 결국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 싶을 만큼 비참한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그때 성경은 아주 중요한 말을 들려줍니다."이에 스스로 돌이켜" (눅 15:17).회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들은 말합니다."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 15:18).그리고 그는 실제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그런데 복음의 놀라움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그를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눅 15:20). 아들은 품꾼의 하나로 받아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며 발에 신을 신깁니다. 그리고 잔치를 엽니다."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눅 15:24).회개는 우리를 정죄하시는 하나님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고, 돌아오는 죄인을 기쁨으로 맞아 주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큰아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십니다.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분노했습니다 (눅 15:25-30). 둘째는 집을 떠남으로 길을 잃었고, 첫째는 자기 의로움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재물의 문제를 통해 다시 드러내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눅 16:13),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는 자기 집 문 앞에 누워 있던 가난한 나사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눅 16:19-21).그의 문제는 단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듣지 않았고, 바로 곁에 있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부자가 형제들에게 누군가를 보내 달라고 간청하자 아브라함은 말합니다."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29).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는 바로 오늘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계속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3-16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간절한 부르심이 있습니다."돌아오라."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주어진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큰 잔치에 초대받고도 세상의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초대를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둘째 아들처럼 멀리 떠났다면 아버지께 돌아오십시오. 큰아들처럼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은혜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을 살펴보십시오.회개는 두려운 말이기 전에 은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뜻이며,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뜻입니다.오늘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붙들고 있어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용서를 구해야 할 죄는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그리고 아버지께 돌아가십시오.우리가 한 걸음 돌이켜 아버지께 나아갈 때, 우리를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은혜의 품으로 맞아 주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래 참으시며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완고하게 하거나 회개를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우리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옵소서. 둘째 아들처럼 주님에게서 멀어졌다면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게 하시고, 큰아들처럼 자기 의와 판단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곁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시고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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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3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1일차 | 누가복음 9-12장2026년 9월 30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9-12장전파되어야 하는 복음"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줍니다.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십니다. 누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예루살렘에는 영광스러운 환영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자신이 고난을 받고 버림받으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9:22).그럼에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굳게 결심하십니다. 십자가는 우연히 맞이하게 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그 길을 걸어가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하거나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고, 나 자신을 높이는 것보다 낮아지고 섬기며, 날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그러나 이 길은 몇 사람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신 데 이어 칠십 명을 따로 세우시고 자신이 가실 각 동네와 지역으로 앞서 보내십니다 (눅 9:1-6, 10:1). 복음은 예수님과 몇몇 제자들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전파되어야 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십니다."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눅 10:2).제자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눅 10:9).복음은 우리가 간직하기만 하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셔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습니다.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삶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눅 10:25-37).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 곁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멈추어 섰습니다. 그는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었으며,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7).복음은 입술로 선포되지만 사랑의 행동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 때, 복음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보이게 됩니다.하지만 예수님은 활동만을 강조하지 않으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마르다가 많은 일로 분주해할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눅 10:41-42).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먼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과 섬김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쉽게 지치고 분주함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눅 11:2).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살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까마귀와 백합화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1).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걷는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자리입니다.복음을 전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하고, 때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멈추어 서야 합니다. 때로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오늘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전하십시오.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굳게 걸어가셨듯이 우리도 주님이 맡겨 주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서 멈추는 소식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계속 전파되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하여 흔들림 없이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순종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을 마음에만 간직하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일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오늘도 우리를 보내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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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2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0일차 | 누가복음 5-8장2026년 9월 29일 화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5-8장복음을 듣고 따른 자들의 이야기"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눅 5:11)누가복음 5장은 갈릴리 호숫가의 한 아침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던 시몬 베드로와 동료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쳐 있었고 이미 그물을 씻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신 후 시몬에게 뜻밖의 명령을 하십니다."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평생 고기를 잡아 온 베드로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밤새 가장 좋은 시간에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앞세웁니다."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그물을 내리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다른 배의 동료들을 불러야 했고 두 배가 잠길 만큼 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눅 5:6-7).그러나 베드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순간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십니다."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눅 5:10).그리고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눅 5:11). 복음을 만난 사람의 삶에 새로운 방향이 시작된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준비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나병이 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깨끗하게 하셨고,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내려보낸 중풍병자에게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눅 5:12-26). 그리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세리 레위에게도 찾아가 말씀하십니다."나를 따르라" (눅 5:27).레위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눅 5:28). 그리고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베풉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눅 5:31-32).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아는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이후 누가는 예수님께 나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앞에 펼쳐 놓습니다. 사랑하는 종이 병든 백부장,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나인 성의 과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죄 많은 여인,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눅 7:1-8:3). 그들의 형편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리고 누가복음 8장에 이르면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복음을 듣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같은 씨가 뿌려지지만 길가와 바위와 가시떨기와 좋은 땅의 결과는 서로 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눅 8:4-15).그러나 제자들의 믿음도 언제나 강했던 것은 아닙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 큰 광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잠들어 계시던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칩니다 (눅 8:22-24).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자 모든 것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 8:25).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제자들은 풍랑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풍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묻습니다."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눅 8:25).누가복음 5-8장은 바로 이 질문에 계속해서 답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자연을 다스리시며, 마침내 죽은 야이로의 딸까지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눅 8:40-56).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베드로가 서 있었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때로는 밤새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으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바로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라."믿음은 모든 상황을 이해한 뒤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빈 그물을 바라보는 대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듯이, 우리도 오늘 우리의 경험과 계산보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나를 따르라."복음을 듣는 것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말씀을 마음에 품고 순종으로 응답하십시오. 풍랑이 일어날 때 환경보다 주님을 바라보고, 실패했을 때 자신의 능력보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죄와 연약함 때문에 주님에게서 멀어지지 말고 오히려 은혜가 필요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복음을 들은 사람의 삶은 결국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이어집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 가운데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게 하옵소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않고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언제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삶의 풍랑이 거세질 때 환경만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과 바다도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복음을 듣는 데 머물지 않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순종으로 열매 맺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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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2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9일차 | 누가복음 1-4장2026년 9월 28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4장데오빌로에게 전한 복음의 소식"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누가복음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데오빌로입니다. 누가는 자신이 기록하는 이야기가 전해 들은 소문이나 아름답게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 기록한 확실한 복음의 증언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눅 1:1-4).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의 소식으로 이어집니다.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며, 그 아이가 장차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눅 1:13-17). 인간적으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선언합니다."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7).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가능성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그리고 얼마 후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의 한 젊은 여인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전합니다. 그 아들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다윗의 왕위를 이어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눅 1:31-33).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믿음으로 응답합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마리아의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마침내 베들레헴의 밤,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낮고 초라한 곳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소식은 가장 먼저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집니다."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천사가 전한 복음의 중심에는 세 가지 놀라운 이름이 있습니다. 구주, 그리스도, 주님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신 아기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이시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세월이 흘러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임하시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눅 3:22).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걸어가시는 길은 곧바로 영광의 길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신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얻으라는 시험,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적으로 증명하라는 시험이 이어집니다 (눅 4:1-13).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시험 앞에서 넘어졌고 광야의 이스라엘도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순종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광야에서 돌아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자라신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서 말씀을 읽으십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21).오랫동안 기다려 온 하나님의 구원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의 시작은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여 줍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주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그리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했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복음입니다."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눅 2:11).예수님은 단지 세상을 위한 구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는 약속을 붙드십시오 (눅 1:37).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을 때에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삶의 무거운 짐과 죄의 억눌림 가운데 있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복음은 오래전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합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하시고,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심을 날마다 더욱 깊이 믿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험하게 하시며, 우리 또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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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7일 목회 칼럼입니다.
    셰릴 샌드버그와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함께 쓴 『Option B』는 샌드버그가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를 갑작스럽게 잃은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Option A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남은 질문은 “내가 원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이 아니라, 상실과 아픔을 지나면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질병과 실패, 깨어진 관계, 자녀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원하지 않았던 ‘Option B’를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의 바울도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며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던 바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성 밖에 버려집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을 때 바울은 다시 일어났고, 이후 자신이 상처 입었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보여 주는 회복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우리에게 “강해져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상처 입고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 상처까지도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은혜의 통로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상처 입은 나를 다시 일으키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나의 상처까지 사용하여 사람을 세우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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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8일차 | 마가복음 11-16장2026년 9월 26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11-16장그리스도의 십자가"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막 15:39)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막 11:8-10). 마침내 왕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의 끝에는 왕궁이나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로 변해 버린 모습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집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를 다시 보여 주십니다 (막 11:15-17).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질문하고, 세금과 부활과 계명을 둘러싼 질문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오히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과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막 11:27-12:40).이제 십자가의 시간이 가까워집니다.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막 14:3-9).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계시는지 알고 계셨습니다.유월절 식탁에서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막 14:22-24). 십자가는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그러나 그 길에서 제자들은 무너집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며,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막 14:43-50, 66-72). 예수님은 홀로 남으십니다.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 십자가의 고통을 모르셨기 때문에 순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온전히 아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마침내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시고, 군병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며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막 15:31).그러나 그들의 조롱 속에 복음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신 것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막 10:45).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됩니다 (막 15:37-38).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열리고 있음을 보여 주는 놀라운 장면입니다.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던 한 로마 백부장의 입에서 뜻밖의 고백이 나옵니다."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막 15:39)마가복음의 첫 문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했습니다 (막 1:1). 그리고 이제 십자가 아래에서 한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높이는 분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그러나 십자가가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의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막 16:6)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승리를 확증하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고, 제자들처럼 어려움 앞에서 도망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망은 우리의 믿음이 언제나 강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실패보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두려움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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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7일차 | 마가복음 6-10장2026년 9월 25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6-10장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찾아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보고도 그분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빈 들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십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십니다 (막 6:1-56).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놀라운 일을 목격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신가.이 질문은 마가복음 6장부터 10장까지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논쟁했고, 무리는 기적을 기대했으며, 심지어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가시는 길에 갑자기 물으십니다."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제자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마침내 정답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생도,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여기서부터 제자들의 더 깊은 배움이 시작됩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걸으실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아 죽임을 당한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막 8:31-32).베드로가 기대했던 것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영광은 원했지만 고난은 이해하지 못했고, 왕은 원했지만 자신을 내어 주시는 왕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를 불러 말씀하십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이제 질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서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집니다.그러나 제자들은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막 9:33-35). 예수님은 낮아지시는데 제자들은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막 10:35-41).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습니다 (막 9:36-37). 그리고 마가복음 10장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이 한 말씀이 마가복음의 중심을 꿰뚫습니다.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오신 왕이 아니라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광을 붙잡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이며, 움켜쥐는 길이 아니라 내어 주는 길이며, 섬김을 받는 길이 아니라 섬기는 길입니다.그리고 오늘 아침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답은 입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면 이제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조금 더 인정받는 것보다 한 사람을 더 섬기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품어 주며,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지는 길을 선택해 보십시오.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오늘 내가 사랑으로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은 결국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라가는 삶으로 나타납니다.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대답하기를 원하십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그 고백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나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게 하옵소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시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을 닮아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선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이 걸으신 길을 믿음으로 한 걸음씩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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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6일차 | 마가복음 1-5장2026년 9월 24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1-5장복음의 시작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복음 1장 1절마가복음은 긴 서론 없이 곧바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리고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의 세례, 광야의 시험을 지나 곧바로 예수님의 공생애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마가가 보여 주는 예수님은 끊임없이 움직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고, 죄인을 부르시는 분입니다.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복음은 단순히 우리의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앞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반응은 회개와 믿음입니다.마가복음 1-5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를 연이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그의 죄까지 용서하십니다. 풍랑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시자 바다가 잔잔해지고, 군대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을 자유롭게 하십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을 고치시며, 마침내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며 일으켜 세우십니다.이 모든 사건은 한 가지 질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마가는 그 답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을 억누르는 권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질병과 사탄과 죽음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유롭게 하는 구원의 권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멀리하던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진 뒤에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며 그분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오늘도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서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염려와 상처, 죄와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의 새로운 삶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복음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시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 날마다 순종하게 하옵소서. 삶의 풍랑과 두려움 속에서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고치시며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삶으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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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5일차 | 마태복음 25–28장2026년 9월 23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8장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인 25–28장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25장에서 예수님은 열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맡겨 주신 것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가장 작은 자를 돌아보며,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입니다.그러나 26장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십자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탁에서 떡과 잔을 나누시며 자신의 죽음이 많은 사람을 위한 언약의 피를 흘리는 대속의 죽음임을 밝히십니다. 겟세마네에서는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제자들은 도망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27장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이 교차하는 자리입니다. 조롱과 배척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신 예수님을 향해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성취됩니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그리고 28장,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는 선언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시고 놀라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그러나 주님은 사명만 주시고 제자들을 홀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명령이면서 동시에 약속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그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두려운 순간이 있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은 내가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에서 나옵니다.오늘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입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외롭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려움보다 약속을 붙드십시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며 제자를 세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부활하신 주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형편과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살아가며, 삶과 말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쓰임 받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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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4일차 | 마태복음 22-24장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4장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장 13절마태복음 22장에서 24장으로 이어지면서 예수님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긴장은 절정에 이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여러 질문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에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탄식하십니다.이어지는 24장에서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자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며 주님의 오심과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을지를 묻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거나 사건들을 추측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들리며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미움을 받고 환난을 겪으며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 제자들이 붙들어야 할 한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그리스도를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우리의 형편이 어려워져도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특별히 예수님은 이 모든 혼란 가운데서도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혼돈을 향해 무작정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에서 물러나는 공동체가 아니라 끝까지 복음을 붙들고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때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세상의 혼란과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지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작은 순종을 계속하고 다시 말씀 앞에 서며 다시 기도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이 끝까지 견디는 믿음입니다.오늘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언제 주님이 오실지를 계산하는 것보다 오늘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잃지 않고 충성스럽게 걸어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흔들리고 우리의 형편이 어려울 때에도 두려움과 미혹에 빠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랑이 식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게 하시며 오늘 맡겨 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며 천국 복음을 삶과 입술로 전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며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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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3일차 | 마태복음 19-21장2026년 9월 21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0장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노라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8절마태복음 19장에서 21장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점점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아질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지만 예수님은 누가 더 낮아져 섬길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두 아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 말을 듣고 분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더 높은 자리와 인정과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예수님은 세상의 통치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권력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절정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자신을 높이신 왕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 왕이 계십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단순한 희생이나 봉사가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의 섬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돕고 먼저 손을 내밀며 나의 편안함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입니다.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도 우리는 쉽게 누가 나를 알아주는지 누가 내 의견을 존중하는지에 민감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시선을 자리에서 사람에게로 돌리십니다. 내가 얼마나 높아졌는가보다 오늘 누구를 섬겼는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함의 기준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곁에 하나님께서 섬기도록 맡겨 주신 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배려와 보이지 않는 수고도 주님을 닮아가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듯이 오늘 우리도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높아지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처럼 낮아져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나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게 하시며 작은 일에도 기쁨으로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그 사랑을 삶으로 흘려보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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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20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주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선교학자이자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The Mission of God’s People』에서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의 큰 이야기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다시 보내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안에는 이미 ‘보냄’이라는 방향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로 보냄 받았는가?”를 묻는 삶입니다. 공항에 수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모여 있어도 각자가 타는 비행편에 따라 각자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우리도 매주 교회로 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은 그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지고, 복음이 본격적으로 땅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선교는 전략회의나 인간의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교회가 먼저 계획하고 성령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교회가 순종하여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선교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움직이는 교회, 그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음의 길을 여셨습니다. 말씀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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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2일차 | 마태복음 16-18장2026년 9월 19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6장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사람들이 말한다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질문을 제자들에게 직접 돌리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제자들 자신의 고백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이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훌륭한 스승이나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에 관하여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고백하며 그분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바르게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가셔야 하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며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섭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는 원했지만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우리에게도 같은 유혹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어려움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의 중심에 십자가를 놓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욕심과 계획과 자존심을 삶의 주인 자리에 두지 않고 예수님께 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일부러 고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는 말로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선택과 관계와 삶의 방향이 그 대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면 오늘도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며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십자가 없는 제자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마지막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 뒤에 부활을 말씀하셨듯이 주님을 따라 자신을 내려놓는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과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뒤를 충실히 걸어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지 않고 우리의 선택과 삶으로 그 믿음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내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맡겨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어려움 앞에서도 주님의 길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과 생명의 소망을 바라보며 끝까지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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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1일차 | 마태복음 13-15장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3장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9절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여러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씨 뿌리는 자와 밭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며 마침내 완성되는지를 보여 줍니다.그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같은 씨가 뿌려지지만 씨가 떨어진 땅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 버리고 돌밭의 씨는 곧 싹이 나지만 뿌리가 없어 말라 버립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문제는 씨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밭에 뿌려진 씨는 동일합니다. 차이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도 매일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지만 말씀이 언제나 삶의 열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이 굳어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쉽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성공에 대한 욕심과 분주함이 말씀을 가로막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있는가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크고 화려하게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되고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스며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작은 씨앗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관계를 변화시키고 결국 삶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내 마음은 길가처럼 굳어 있지는 않습니까. 돌밭처럼 순간적인 감동만 있고 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가시처럼 말씀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좋은 땅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의 작은 순종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많이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좋은 마음을 주옵소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말씀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작은 것부터 순종하게 하시며 그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을 변화시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들을 귀를 주시고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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