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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1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70일차 | 다니엘 5–8장2026년 8월 18일(화) 아침묵상본문: 다니엘 6장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다니엘 6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자굴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중심은 사자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했던 힘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생겨난 용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기도의 습관이었습니다.다니엘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의 충성됨과 탁월함을 인정하여 그를 전국을 다스리는 높은 자리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관리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그의 허물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말씀합니다(단 6:4).결국 그들은 다니엘의 신앙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지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에게 기도는 단순한 개인적 경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걸린 선택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면 죽을 수 있었고, 잠시 중단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다니엘의 선택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두 표현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또한 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갑자기 기도를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날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믿음이 위기의 날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상이 그의 지위를 빼앗을 수 있고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은 빼앗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다니엘이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왕의 조서도 취소되지 않았고 사자굴의 위협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먼저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드리는 반응만이 아닙니다. 아직 앞길을 알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다음 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부르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단 6:22). 다니엘을 지킨 것은 그의 높은 지위도, 뛰어난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를 지키셨습니다.우리에게도 믿음을 흔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신앙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고,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뒤로 미루며, 사람들의 평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반응에 따라 믿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상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한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평범한 날의 기도가 위기의 날에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감사하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의 상황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오늘의 기도살아 계시며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니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믿음을 주옵소서.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압력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게 하시고,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전에 하던 대로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감사하게 하시며, 오늘도 저의 삶과 가정과 모든 앞날을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옵소서. 어떤 사자굴과 같은 상황에서도 함께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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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2.2026 (2026년 8월 1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9일차 | 다니엘 1–4장2026년 8월 17일(월) 아침묵상본문: 다니엘 3장뜻을 정한 믿음은 세상의 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8)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과 전혀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나라를 잃었고 성전을 떠났으며 이름까지 바벨론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은 그 믿음의 출발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단 1:8)라고 표현합니다. 환경이 그들의 삶을 바꾸었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그 믿음은 다니엘 3장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을 받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엎드려 절하도록 명령합니다. 거절하는 사람은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선택지는 분명했습니다. 한 번만 절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만 신상에 절하는 타협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마음속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선택으로 나타나야 했기 때문입니다.세 친구는 왕 앞에서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단 3:17).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이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결국 세 사람은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분명 세 사람을 결박하여 던졌는데 불 가운데에는 네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단 3:24-25). 하나님은 그들이 불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 주신 것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 때때로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련을 없애 주시지는 않지만 그 시련 가운데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우리에게도 풀무불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믿음을 지키면 손해를 볼 것 같고, 정직하게 살면 뒤처질 것 같으며,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간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저는 주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참된 믿음은 상황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묻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은 형편이 좋을 때만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충성하는 믿음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 싸우기 위한 거창한 결심보다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는 믿음입니다. 작은 선택에서부터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며, 결과보다 순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뜻을 정한 사람은 시험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선택해 온 믿음으로 그 시험을 통과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풀무불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불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참된 믿음은 불이 없는 삶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입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압력과 두려움 앞에서도 믿음을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원하는 결과를 주실 때만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선택하는 믿음을 주소서. 작은 일에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뜻을 정하게 하시고,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을 때에도 그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의 모든 선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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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6일 목회칼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계획대로 잘되고 사람들이 모이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계획이 무너지고 흩어지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씨앗을 창고에 모아 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모여 있을 때 보존되지만 흩어질 때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큰 박해가 일어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누가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라는 모판에서 자라난 복음의 씨앗들을 더 넓은 세상에 뿌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떠나고 싶지 않은 은혜의 자리였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이 떠나야 할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모으심으로 준비하시고, 흩으심으로 사용하십니다. 요셉의 애굽도, 모세의 미디안도, 다니엘의 바벨론도 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에서 무너짐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면 너무 빨리 실패라고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눈에는 흩어짐처럼 보이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새로운 파송이 되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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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8일차 | 에스겔 45–48장2026년 8월 15일(토)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47장“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9)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새 성전의 문지방 아래에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차던 물이 천 척을 지나자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지나자 허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됩니다(겔 47:3-5). 처음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물줄기가 점점 깊어져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의 강이 된 것입니다.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은 특별합니다. 물이 이미 풍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메마르고 죽어 있는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마침내 그 물은 사해에 이릅니다. 사해는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바닷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수가 죽음의 바다에 닿자 그곳에 생명이 시작됩니다. 물고기가 번성하고 강 좌우에는 각종 과실나무가 자라며, 그 잎사귀는 시들지 않고 열매도 끊이지 않습니다.이 환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진 생명력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곳에는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것이 다시 풍성해지며, 절망했던 곳에 새로운 소망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해가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죽어 있던 바다가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물이 그곳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기도가 메마르고,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흘러오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에스겔의 환상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요한은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요 7:39). 에스겔이 보았던 생명의 강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메마른 영혼이 살아나고, 상처 입은 마음이 회복되며,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갑니다.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은혜를 받아 저장하는 저수지가 아니라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가정으로 흘러가고, 받은 용서가 이웃에게 흘러가며, 받은 위로가 고통받는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이 조금 더 살아나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조금 더 소망을 얻는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메말라 있다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에게만 머물게 하지 마십시오. 가정과 교회와 일터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곳마다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곳에 다시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오늘의 기도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메마른 제 영혼에 성령의 생수를 풍성히 부어 주옵소서. 제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날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사랑과 용서와 위로를 나에게만 간직하지 않고 가정과 교회와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하시며, 오늘 제가 머무는 곳마다 주님의 생명과 소망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죽은 것이 살아나고 메마른 곳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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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7일차 | 에스겔 41–44장2026년 8월 14일(금)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43장“회복의 완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머무는 것입니다”“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겔 43:4-5)에스겔 41–44장은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 줍니다. 성전의 구조와 제단, 제사와 제사장의 규례가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모든 말씀의 중심에는 에스겔 43장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에스겔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비극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서 떠나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겔 10:18-19; 11:23). 성전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떠났습니다.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러나 43장에 이르러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겔 43:2), 그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다시 성전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바로 그 방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겔 43:5)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회복의 절정입니다.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회복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우리도 때로 회복을 환경의 변화로만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건강이 좋아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형편이 나아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그것들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가장 깊은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이 다시 채워졌느냐보다 누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계시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없는 풍요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부족함이 더 복됩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성취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요 1:14)라고 증언합니다.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심으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고전 6:19)입니다.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중심은 무엇을 많이 이루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의 중심에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할 수 있고, 교회를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보다 사람의 인정과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새 성전 환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삶의 중심에는 누가 계시는가?”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기를 구하십시오. 회복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는 것입니다.오늘의 기도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성공과 환경의 변화보다 주님의 임재를 더욱 사모하게 하옵소서. 제 마음에서 주님보다 앞세웠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시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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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6일차 | 에스겔 37–40장2026년 8월 13일(목)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37장“하나님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십니다”“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겔 37:5)에스겔 37–40장은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회복을 보여 줍니다. 그 시작이 바로 에스겔 37장의 유명한 마른 뼈 골짜기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수많은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 뼈들은 단지 말라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말랐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가능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완전한 죽음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 37:11)고 탄식했습니다. 나라를 잃었고, 예루살렘은 무너졌으며, 성전마저 파괴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다시 시작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뜻밖의 질문을 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자신의 판단으로 가능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는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법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서로 맞춰지고 힘줄이 생기며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그러나 아직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게 하시자 생기가 그들 안에 들어가고 그들이 살아나 “극히 큰 군대”가 됩니다(겔 37:10). 죽음의 골짜기를 생명의 군대로 바꾼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였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어 버린 이스라엘에게 다시 생명을 주십니다.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을 살리시고, 낙심한 영혼을 일으키시며,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생명을 일으키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마른 뼈처럼 느껴지는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기도했지만 변화되지 않는 가족,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관계, 식어 버린 믿음과 무너진 소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신다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른 뼈를 보면서 살아 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마른 뼈도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오늘의 기도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제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며 쉽게 낙심하고 포기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른 뼈와 같은 상황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게 하시고, 제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생기를 제 안에 충만히 불어넣어 주셔서 메마른 믿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포기했던 사람과 상황을 위해 다시 기도하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도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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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5일차 | 에스겔 33–36장2026년 8월 12일(수)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36장“하나님은 우리의 환경보다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에스겔 33–36장은 심판의 메시지에서 회복의 메시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예루살렘은 결국 무너졌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장에서 하나님은 파수꾼의 사명을 다시 일깨우시며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34장에서는 자기 배만 채우던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며 다윗과 같은 한 목자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36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외적인 회복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 자체가 새롭게 되는 근본적인 회복이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벨론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도, 빼앗긴 땅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환경만 바뀐다고 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포로 생활이 끝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도 마음이 그대로라면 결국 같은 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겔 36:25)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진정한 회복은 상황을 바꾸시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고 사람의 중심을 변화시키시는 데서 시작됩니다.우리도 어려움이 찾아오면 먼저 환경이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형편이 나아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변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이러한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환경보다 먼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원망하던 자리에서 감사하게 하시며, 두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환경이 변해야 평안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환경을 넘어서는 평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더욱 분명하게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 36:27). 신앙생활은 우리의 의지로 자신을 조금씩 개선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며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새로운 삶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히 더 나은 환경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약속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 상황만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주님, 먼저 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없어지는 것보다 그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은 형편의 회복이지만, 마음이 바뀌는 것은 인생의 회복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말씀을 기쁨으로 따르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환경이 바뀌기만을 바라기보다 먼저 제 마음이 주님 앞에서 새로워지기를 구하게 하옵소서. 죄와 고집으로 굳어진 마음을 제거하시고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를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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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4일차 | 에스겔 29–32장2026년 8월 11일(화)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29장“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우상입니다”“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겔 29:6)에스겔 29–32장은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애굽은 오랜 역사와 군사력, 풍요로운 나일강을 가진 강대국이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위협이 커질 때마다 하나님보다 애굽의 도움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애굽의 군대가 더 현실적인 힘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을 가리켜 “갈대 지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지하면 몸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져 손을 찌르는 지팡이라는 것입니다.애굽의 문제는 단순히 강한 나라였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겔 29:3)고 말합니다. 나일강의 풍요와 나라의 번영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받은 은혜를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시작됩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의 힘과 영광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우리에게도 ‘애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과 직장, 건강과 경험, 사람과 인맥, 지식과 능력이 하나님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질 때 그것이 우리의 갈대 지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도구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흔드시면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도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도 궁극적인 신뢰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결국 가장 신뢰하는 것을 섬기게 됩니다. 세상의 힘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세상의 갈대 지팡이는 언젠가 부러지지만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내가 무엇을 가장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경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도움보다 주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십시오. 믿음은 세상의 모든 지팡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지팡이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힘과 도움이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보다 돈과 사람과 경험과 제 능력을 더 의지했던 마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제 힘으로 얻은 것처럼 생각했던 교만을 용서하시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갈대 지팡이를 붙들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오늘도 제 생각과 선택과 발걸음이 오직 주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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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15.2026 (2026년 8월 1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63일차 | 에스겔 25–28장2026년 8월 10일(월) 아침묵상본문: 에스겔 25장“다른 사람의 무너짐을 기뻐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네가 내 성소가 더럽혀지며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며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겔 25:3)에스겔 25–28장은 시선을 이스라엘에서 주변 나라들로 돌립니다.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 그리고 두로와 시돈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차례로 선포됩니다. 이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 왔고, 유다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암몬은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고 유다가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아하 좋다”라고 외쳤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은 것입니다.유다는 분명 죄를 범했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죄가 다른 나라의 악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의 고난을 조롱하고 이용했던 나라들의 죄도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에는 편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살피십니다. 누군가 실패했을 때 은근히 기뻐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고 여기며 만족하는 마음도 하나님 앞에서는 돌아보아야 할 죄입니다.잠언은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잠 24:17).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복음은 원수의 실패를 즐기는 마음에서 그 사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에스겔 25–28장의 심판 가운데 반복되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목적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누가 참된 주권자인지를 알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유다도, 암몬도, 모압도, 두로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기보다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복수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실패 앞에서도 긍휼을 품을 수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누군가의 실패와 아픔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무너짐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라도 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사랑과 긍휼을 선택해야 합니다. 원수의 무너짐을 기뻐하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면, 원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공의와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실패와 고통을 보며 기뻐하거나 판단했던 제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까지도 긍휼히 여기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원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무너짐을 즐거워하기보다 그의 회복을 위해 중보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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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2026년 8월 9일 목회칼럼입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오늘날 SNS의 ‘분노 문화’는 이해하기보다 먼저 판단하고, 용서하기보다 비난하며, 한 번의 실수를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도 받은 은혜는 쉽게 잊으면서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 붙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고 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상처는 돌에 새기며 살아갑니다.복수는 상처를 끝내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를 낳아 과거를 반복하게 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거짓 고발을 받고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는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현장에는 훗날 사도 바울이 될 사울이 서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용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용서를 통해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느냐만이 아니라, 그 상처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입니다. 상처를 붙들면 과거가 반복되지만, 십자가를 붙들고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복수는 역사를 반복하지만, 용서는 역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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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특새 4 [아가서] (토) 사랑의 완성
    특새 4 [아가서] (토) 사랑의 완성 (아 8장 5-14절) 설교: 이규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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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특새 4 [아가서] (금) 사랑의 회복
    특새 4 [아가서] (금) 사랑의 회복 (아 5장 2-8절)  설교: 이규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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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특새 4 [아가서] (목) 사랑의 시선
    특새 4 [아가서] (목) 사랑의 시선 (아 4장 1-16절) 설교: 이규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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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특새 4 [아가서] (수) 사랑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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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09.2026 [특새] 4 아가서 (화) 사랑의 부르심
    [특새] 4 아가서 (화) 사랑의 부르심 (아 2장 8-17절) 설교: 이규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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