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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6년 10월 2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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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조회 1회 작성일 26-10-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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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8일차 | 사도행전 19-20장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19-20장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우리는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고,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기억하게 될까?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이 질문에 자신의 삶으로 대답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바울은 앞으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능력이나 용기에 대한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복음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우상숭배와 마술이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책들을 모아 불살랐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20). 복음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적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충분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평안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다른 것들이 우리의 두려움과 소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이 옛 삶을 상징하던 책들을 내려놓았듯이, 우리도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합니다.

복음이 확장되자 에베소에는 거센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판매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이 위협받는다고 느꼈고, 도시는 큰 소동에 휩싸였습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자 우상숭배를 통해 이익을 얻던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돈과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을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자신이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기억한 것은 자신의 업적이나 성공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감당했던 수고와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다 보면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만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고, 교회를 섬기며 오해와 실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눈물이 없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눈물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까지도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명보다 앞세우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는 것이 그의 삶을 움직이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가,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인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우리는 바울과 똑같은 선교의 길을 걷도록 부름받은 것은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바울은 작별의 순간에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행 20:32). 자신이 계속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하는 성도들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 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며 모든 위험에서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말씀과 기도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며 약한 사람들을 돕는 본을 보였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했습니다(행 20:35). 복음은 우리의 삶을 받는 사람에서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고 연약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데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감당해 온 책임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달려온 길의 성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속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일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보다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주님의 은혜에 맡기며 기도하십시오. 언젠가 우리도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은혜는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맡기신 길을 믿음과 감사로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명을 잊고 살아왔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옵소서.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로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와 이웃을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며 기도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달려갈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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